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054
한자 城山里
영어공식명칭 Seong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으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2년 3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리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95년 3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로 편입
성격 법정리
면적 1.8㎢
가구수 1,782가구[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남/여] 5,098명[남자 2,622명/여자 2,476명]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성산리(城山里)는 이 지역에 성산(城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산이라는 지명은 신라선덕 여왕 때인 646년 축조한 토성이 있어 성산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대구부 화현내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화현내면의 성산동과 서촌동을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으로 병합하였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성산리가 되었다. 1992년 3월 1일 화원면이 화원읍으로 승격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산리에는 성산의 남쪽 비탈면에 마을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아래로 천내천(川內川)이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또한 성산의 화원 동산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금호강(琴湖江)이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천내천의 남부에는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설화들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설화들은 성서(城西), 월배(月背)에서 화원에 걸쳐 낙동강 연변에 펼쳐진 쌀밋들의 일부로 분류된다.

[현황]

성산리화원읍 중심 시가지의 북서부 끝에 위치하는 마을로, 성산 1리에서 성산 6리까지 6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1.8㎢이며, 총 1,782가구에 5,098명[남자 2,622명, 여자 2,476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성산리는 북동쪽으로는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남서쪽으로는 설화리, 남동쪽으로는 천내리와 이웃하고 있다. 성산리에는 서촌(鼠村), 사문나루·사문진(沙門津), 웃마 ·웃사문, 아랫마·아랫사문, 배산(盃山)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서촌은 신라 시대 이 마을이 성주현에 편입되었을 당시 인근 현 소재지 마을에 식량 창고가 있었는데, 그 곡식을 먹고자 쥐들이 많이 모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문나루·사문진은 화원에서 고령군 다산면으로 건너가는 낙동강의 나루터로 강가의 모래가 있어 모래 사(沙) 자를 쓰고, 과거 동래, 김해 등지에서 배로 소금 등을 운반하고 이 지역의 물건을 실어 가는 문(門)의 역할을 담당한 큰 나루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웃사문은 사문의 위쪽에 있다 하여, 아랫마·아랫사문은 사문의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산은 그 마을 모양이 술잔[배(盃)]과 같아 유래된 이름이며, 잔뫼라고도 한다.

성산리 남쪽으로 중부 내륙 고속 국도 지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를 지나는 국도 5호선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나온 도로망이 성산리천내천을 따라 올라와서 낙동강사문진교를 건너 고령군 다산면으로 향한다. 주거 지역은 성산의 남쪽 비탈면에 형성되어 있으며, 중부 내륙 고속 국도 지선의 남쪽은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명곡리와 함께 화원읍의 중심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한편, 중부 내륙 고속 국도 지선의 남쪽 시가지는 아파트 등 주거 지역, 상업 시설과 함께 공업 시설들이 혼재해 있는 곳이다. 천내천 남부에 형성된 평야에서는 농업 활동이 이루어지며, 화원 동산의 주변에는 유원지 시설로 인하여 음식점 등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성산에는 삼국 시대 것으로 보이는 고분 100여 기로 구성된 성산리 제1고분군과 십여 기 정도 남아 있는 성산리 제2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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