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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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風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Hyeonpung Young Adult Grou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0년 8월 달성군 현풍면[현 현풍읍]에서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
[개설]
현풍청년회는 풍기 개량과 노동 야학 운영 등을 중심으로 실력 양성론에 입각해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현풍청년회는 청년들의 풍기 개량과 회관 건립, 그리고 노동 야학 개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25년 10월 25일 대구 청년 회관에서 열린 달성군 청년 연맹의 가맹단체가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현풍청년회는 1920년 8월 3일 현풍 공립 보통학교에서 지역의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통해 창립되었다. 창립총회에서 회장에 곽종해, 부회장에 김윤규(金潤奎), 총무에 김문기, 재무부장에 김태원(金太元)이 선출되었다. 현풍청년회의 초기 활동은 청년들의 풍기 개량, 회관 건립 등이었다. 풍기 개량은 음주 끊기, 여자 놀음 금지 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회관은 1921년 4월에 추진되어 같은 해 7월 낙성식을 가졌다. 1921년 9월 20일에 문을 연 현풍청년회의 야학은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되었다. 그 규모는 1922년의 경우 약 70여 명의 학생을 수용하는 정도였다. 노동 야학의 회장은 김윤규, 부회장은 김태원이었다. 현풍청년회의 주도 인물 모두가 ‘이현수의 독립 자금 모집 운동과 워싱턴 회의 청원 운동’에 연루되어 일제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현풍청년회는 달성군 최초의 청년 운동 단체로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