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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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 |
영어공식명칭 | Fortress |
이칭/별칭 | 성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재환 |
[정의]
삼국 시대 달성 지역의 성.
[개설]
달성군에서 성의 위치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크게 3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1그룹은 하산리 성터, 문산리 산성(汶山里山城), 죽곡리 산성(竹谷里山城) 등의 달성군 다사읍 지역, 2그룹은 성산리 토성(城山里土城), 설화리 산성(舌化里山城), 위천리 산성(渭川里山城) 등의 화원읍 지역, 3그룹은 성하리 서산성(城下里西山城), 초곡산성(草谷山城), 도동리 석문산성(道東里石門山城), 내리 토성(內里土城) 등의 현풍읍 지역이다. 성의 입지에 따라서 강변 성과 내륙 성으로도 구분된다. 강변 성은 하산리 성터와 문산리 산성, 죽곡리 산성, 성산리 토성, 위천리 산성, 성하리 서산성, 도동리 석문산성, 내리 토성이고, 내륙 성은 설화리 산성과 초곡산성이다. 성의 규모가 1,000m를 넘는 대형급의 거점 성으로는 설화리 산성과 초곡산성, 도동리 석문산성이 있다. 도동리 석문산성을 제외한 성은 내륙 중심부에 위치한다. 둘레 1,000m 미만의 중소형급 성들은 낙동강 변에 위치한다. 결국 최종 도피 성이자 거점 성은 산악 지역인 내륙에, 감시와 1차 방어 목적의 성들은 외곽에 분포시킨 방어 구도를 나타낸다.
성벽은 크게 토축, 석축, 토석 혼축으로 구분된다. 이른 시기의 성인 성산리 토성과 내리 토성은 삭토와 토축 방식으로, 성하리 서산성과 초곡산성, 죽곡리 산성은 가공한 면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문산리 산성과 위천리 산성, 도동리 석문산성은 지표 조사에서는 토석 혼축처럼 보이지만 기초 또는 바깥쪽에 석축 기단부를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석축성에 포함된다. 성내 구조물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된 적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지표 조사에서 건물 터와 집수 시설 터가 확인되기도 한다.
[출토 유물]
달성군의 성에서 채집되는 유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산리 토성과 성하리 서산성에서 4~5세기 대의 노끈 무늬 짧은 목 항아리와 굽다리 접시가 출토되었고, 하산리 성터와 문산리 산성, 내리 토성에서는 5세기 대의 토기 조각이, 죽곡리 산성과 설화리 산성, 위천리 산성, 초곡산성 등에서는 5세기 대~통일 신라 시대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성하리 서산성과 초곡산성에서 통일기 기와도 많이 채집된다. 한편 상당수의 성에서 조선 시대 자기편들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도 성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달성 지역의 성은 신라의 낙동강 중류역 일원에 대한 지배력 강화 및 대가야·고구려 등 외부 세력에 대한 견제, 낙동강 수로의 통제 등을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축성되었다. 성은 대구 지역의 방어 체계에 포함되는 성과 현풍 지역의 방어 체계에 포함되는 성으로 나눌 수 있다. 대구 지역의 방어 체계에 포함된 성은 하산리 성터, 문산리 산성, 죽곡리 산성, 성산리 토성, 위천리 산성, 설화리 산성이며, 거점 성은 가장 큰 내륙 성인 설화리 성터로 추정된다. 현풍 지역 방어 체계에 포함된 성은 강변에 위치한 성하리 서산성과 도동리 석문산성, 내리 토성, 내륙에 위치한 초곡산성 등이다. 규모가 큰 초곡산성과 도동리 석문산성이 중심 거점 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