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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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英 |
영어공식명칭 | Lee Ji Yeoung |
이칭/별칭 | 자실(子實),수월당(水月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실(子實), 호는 수월당(水月堂). 증조할아버지는 이필(李佖)이고, 할아버지는 이경두(李慶斗)이다. 아버지는 전 현감 낙포 이종문(李宗文)이며, 어머니는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이다. 부인은 김치삼(金致三)의 딸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활동 사항]
이지영(李之英)[1585~1639]은 하빈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증광시 병과 30위로 합격하였고, 그해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에 임용되었다. 1614년(광해군 6) 학록(學錄), 학정(學正)을 거쳐, 1616년(광해군 8) 함경북도 평사(評事)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1617년(광해군 9)부터 1619년(광해군 11)까지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예조 좌랑·직강(直講) 등을 역임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성절사 서장관(聖節使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고, 그 해 호조 좌랑·직강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光海君) 말기 정치가 혼란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년(인조 1) 북청 판관으로 재임하였다. 1627년(인조 5) 해직을 청하고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1630년(인조 8) 호조 좌랑에 다시 임용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633년(인조 11) 울진 현령에 제수되었다. 임기가 다 되어 체직(遞職)되어야 하지만 춘추관 기주관을 겸직하였다. 1639년 1월 22일 사망한 후 9월 3일 대구부 하빈현 기곡리[현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에 장례 지냈다.
[학문과 저술]
18세인 1602년(선조 35) 다사면 서재에 있는 낙재 서사원에서 수학하였다. 유고로 『수월당집(水月堂集)』이 있는데, 집안사람들의 유고와 함께 『전성 세고(全城世稿)』에 실려 있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기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23년(인조 1) 북청 판관으로 있으면서 실적이 우수하여 정려(旌閭)를 받았다. 1729년(영조 5) 사간원 사간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