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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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成 |
영어공식명칭 | Do 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활동 사항]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포산이성조(包山二聖條)에 의하면 통일 신라 시대 포산(包山)[현재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비슬산]에 도성(道成)과 더불어 관기(觀機)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관기는 남쪽에 암자를 짓고 살았고, 도성은 북쪽 굴에 살면서 서로 왕래하며 도를 구하였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자 하면 산 속의 나무가 모두 남쪽을 향해 굽혀 영접하는 것 같았으므로 관기는 이것을 보고 도성에게 갔으며, 관기가 도성을 맞이하고자 하면 역시 나무가 북쪽으로 구부러지므로 도성이 관기에게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신라 아미타(阿彌陀) 신행의 일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도성은 거주하는 뒷산의 높은 바위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하루는 바위 사이에서 빠져나와 몸을 허공에 날리며 떠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혹자는 수창군(壽昌郡)[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가서 죽었다고도 한다. 그러자 관기도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도성이 거주하던 굴 아래에 후대인들이 절을 지었는데 도성암(道成庵)이라 한다. 982년(성종 1) 성범(成梵)이라는 승려가 처음으로 그 절에 와서 살았다. 성범은 만일 미타 도량(萬日彌陀道場)을 열어 부지런히 50여 년을 전념하였는데 특별히 상서로운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현풍(玄風)의 신도 20여 명이 결사(結社)를 만들고 해마다 향나무를 주워 절에 바쳤는데, 그 향나무가 밤이 되면 촛불처럼 빛을 발하였다. 당시 고을 사람들은 이러한 상서를 관기와 도성의 영감(靈感)이거나 포산의 산악신인 정성천왕(靜聖天王)의 도움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가섭불(伽葉佛) 시대에 부처의 부탁으로 포산 산중에서 1,000인의 출세를 기다리는 산신이 바로 정성천왕이다. 포산에서는 9성(九聖)이 나왔는데 도성은 관기·반사(搬師)·첩사(𣛻師)·자양(子陽)·도의(道義)·성범(成梵)·금물녀(今勿女)·백우사(白牛師)와 더불어 그 중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