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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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平文氏 |
영어공식명칭 | Nampyeong Munssi|Nampyeong M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경호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무성공(武成公)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는 남평문씨는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1812~1874]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화원읍 본리리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남평문씨는 문다성을 시조로 받들고 그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문다성은 472년(신라 자비왕 15) 백제 남평현[현재 전라북도 나주시 남평읍] 동쪽 장자지란 못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다성은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문다성을 시조로 삼고 남평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
『남평문씨 대동보(南平文氏大同譜)』에 따르면 문다성의 21세손 문세근(文世根)이 송경(松京)에서 대구(大邱) 달구현(達句縣)으로 이거하였다. 문세근과 그의 장남 문동현(文東顯)이 각각 달성 서씨, 달성 백씨와 혼인한 것으로 보아 지역 토성(土姓)과의 혼인을 통해 대구 지역으로 이거해 온 것으로 짐작된다. 문세근과 문동현의 경우 생몰 연대가 기록되지 않아 정확한 이거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문동현의 아들 문영남(文榮男)이 1550년(명종 5)에 출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묘지는 인흥동(仁興洞) 혜곡(惠谷)에 있다. 이후 문성공의 26세손 문재징(文在徵)이 대구광역시 서구 성당동 부근에 입향하였고, 30세손 문경호와 그의 아들 문달규(文達圭)가 인흥 마을에 본격적으로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현황]
1998년 달성 마을지 편찬 위원회가 편찬하고 달성 문화원에서 간행한 『달성 마을지』에 따르면, 화원읍 본리 1리에 남평문씨 15가구가 거주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2000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1,004명이 달성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쉽게도 도시화 과정 속에 아파트 및 공장 건설 등으로 인해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각 지역에 거주하는 남평문씨 현황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관련 유적]
달성 지역 남평문씨의 관련 유적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번지에 소재한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가 있다. 문익점(文益漸)[1329~1398]의 18세손 문경호가 터를 닦아 남평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절이 있던 명당 터를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1910~1940년 무렵에 전통 가옥 9채와 정자 2채를 건립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광거당(廣居堂), 수봉 정사(壽峰精舍), 인수 문고(仁壽文庫)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민속 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