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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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寧金氏 |
영어공식명칭 | GeumnyeongGim Clan|GeumnyeongGimssi |
이칭/별칭 | 후김해(後金海)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창도를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김시흥(金時興)을 시조로 하는 김녕김씨는 임진왜란 당시 김창도(金昌度)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하빈면 봉촌 1리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김녕김씨 시조 문열공 김시흥은 경순왕의 8세손이다. 고려인종 때에 한림원에 오르고,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김녕군에 봉해졌다. 고려원종 때 금주(金州)를 김녕(金寧)으로 고쳐 부르다가 김해(金海)라고 불리게 되면서 김해 김씨와 혼돈이 생기자 김해 김씨를 선김해(先金海), 김녕김씨를 후김해(後金海)라 불러왔다. 이후 1867년(고종 4) 종중 회의를 통해 본관의 명칭을 김녕으로 하고, 예조(禮曹)에 상소를 올려 1884년(고종 21) 공식적으로 김녕김씨가 되었다. 김녕김씨는 영돈녕공파, 진주목사공파, 충정공파, 영광군수공파, 병조참의공파, 중추부사공파, 진천군수공파, 대사헌공파, 충경공파, 서윤공파, 주부공파, 유수공파 등을 비롯해 총 34파로 분파되어 있다.
[입향 경위]
달성군 하빈면 봉촌 1리 김녕김씨 집성촌에 세거하고 있는 김녕 김씨의 입향조는 김창도이며, 임진왜란 때 입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8년 달성 마을지 편찬 위원회가 편찬하고 달성 문화원에서 간행한 『달성 마을지』에 의하면, 김창도는 1548년(명종 3)에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당시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하빈 봉촌으로 진군하던 중 왜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고 한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달성군에 거주하는 김녕김씨는 2,772명으로 확인되었다. 김녕김씨 세거지인 하빈면 봉촌 1리는 200가구가 넘는 큰 마을로 이 중 약 60가구가 김녕김씨이다.
[관련 유적]
김녕김씨의 관련 유적으로는 달성군 하빈면 봉촌 1리에 김창도의 묘소와 첨모재(瞻慕齋) 등이 있다. 첨모재는 입향조 김창도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