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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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桂山洞一街 |
영어공식명칭 | Gyesan-dong 1ga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1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권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계산동1가(桂山洞一街)는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계산동’ 지명 유래의 근원인 계산과 비석거리 등이 있다. 비석거리는 매일신문사 맞은편에 위치하였으며 비석의 재료인 석물 가게와 석재로 가공된 비석들이 골목에 줄지어 서 있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명칭 유래]
계산동의 유래가 되는 ‘계산(桂山)’은 계수나무가 많이 자라던 작은 언덕을 말하나 지금은 실체를 찾을 수 없다.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동산 우측 가장자리로 대구천이 흘러 앞산에서 발원한 달서천으로 합류하고 대구천 아래 제방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이 마을을 ‘계산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원래 경상북도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다. 1911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동산동 일부를 합쳐 명치정1정목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경상북도 대구부 계산동1가로 하였고, 1949년 대구의 시 승격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계산동1가가 되었다. 1963년 구제(區制) 실시로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계산동1가가 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계산동1가, 1995년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1가가 되었다. 1993년에 서문로2가 일부를 계산동1가에 편입시켜 동 경계를 조정하였다.
[자연환경]
계산동1가 서쪽에는 동산[청라언덕] 아래로 흘러 달서천으로 합류하던 대구천이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복개된 상태이다. 계산동 일대는 평지라는 지형적 환경과 더불어 대구의 중심부여서 일찍부터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현황]
계산동1가는 계산동1가가 포함되는 행정동인 성내2동은 성내3동, 대신동, 남산2동, 성내1동을 비롯하여 북구의 칠성동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의 국채보상로와 동쪽의 서성로에 접하여 있어 접근성이 좋다. 특히 출판 또는 인쇄 관련 업체가 주종을 이룬다.
계산동1가 일대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대구근대화골목에 인접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관광객들의 입맛을 유혹할 만한 음식점이 곳곳에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장군, 진린(陳璘) 도독을 따라 수륙지획주사(水陸地劃主事) 직함으로 참전한 두사충(杜師忠)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오는 뽕나무골목과 이어지는 흥미로운 관광 명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