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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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講遊園 懇親會 |
영어공식명칭 | Social Meeting of Kangyuw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13년 3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한 독립운동 관련 사회단체.
[설립 목적]
강유원간친회는 1913년 3월 홍주일이 윤창기 등과 함께 해외 유학생 출신 인물과 국내 학생과의 규합을 위하여 결성한 사회단체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강유원간친회는 1913년 3월 15일에 대구에서 홍주일·오재숙·윤창기·서병룡 등이 해외 유학생 출신 인물과 국내 학생과의 규합을 위하여 결성한 사회단체이다. 여기에 서상일을 비롯한 박연조·이시영·김유덕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강유원간친회의 회원은 40명 내지 5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회원 상당수가 달성친목회의 회원과 일치하였다.
강유원간친회는 달성친목회 회관을 모임 장소로 이용하면서, 매주 1회씩 정기모임을 가졌다. 강유원간친회는 회원간의 강화(講話)와 친목 도모를 꾀하였다. 강유원간친회는 학식과 명망이 있는 사람을 초빙하여 지식 개발을 도모하고, 유교 고전을 통하여 유학적 지식을 축적하기도 하였다. 또 강유원간친회는 1916년 경남 진주의 청년들이 청년운동회를 개최할 때 참석하는 등의 교류를 쌓았다. 강유원간친회는 토론 활동과 체육 활동을 매개로 경상남북도 지역의 신지식층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강유원간친회는 달성친목회가 경상남도의 자본가들과의 교류를 추진할 때 매개 역할을 담당하였다. 달성친목회의 서상일이 경상남도 통영의 서상호, 서상환, 경상남도 마산의 김기성 등의 자본가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주요 매개고리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강유원간친회는 1916년 4월 일제 당국에 의하여 강제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강유원간친회는 1910년대 대구의 신지식층들이 경남의 신흥 자산가들과 교류하며, 궁극적으로는 독립을 전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