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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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共産靑年會 慶北委員會 |
이칭/별칭 | 고려공청 경북위원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고려공산청년회 소속 비밀 결사.
[개설]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약칭 고려공청]는 조선공산당을 결성한 다음 날인 1925년 4월 18일 서울 박헌영의 집에서 비밀리에 조직된 공산주의청년동맹이다.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청년에게 사상교양을 하고 선전 훈련을 하는 예비 학교의 성격을 가졌던 고려공산청년회는 모두 4차에 걸쳐 재결성되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해체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1928년 7월 발생한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는 고려공산청년회의 지역 비밀결사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 사회주의 청년운동을 통일시켰다.
[설립 목적]
고려공청 경북위원회(高麗共靑慶北委員會)는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사회주의 청년운동을 통일시키고, 고려공산청년회의 지역 조직으로서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발전을 꾀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1927년 8월 결성되어 사회주의 청년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는 1928년 7월 ‘제4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으로 조선공산당의 주요 구성원들이 일제 관헌에 대거 검거되면서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조선공산당은 해체되었고 각 지역 야체이카[사회주의운동의 세포 조직]도 붕괴되었다. 이후 대구와 경상북도에서는 1929년 11월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를 비롯한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도 간부 기관’ 결성을 시도하다가 일제 관헌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고려공청 경북위원회의 책임비서는 홍보용(洪甫容)이었고 위원은 김석천(金錫川)이었다. 1927년 11월 달성공원에서 열린 ‘경북공산당대회’[도 간부회]에 참가한 홍보용은 전국 당대회에 출석할 대표로 선정되었다.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는 제4차 조선공산당이 결성되면서 제3차 조선공산당 시기에 비하여 조직이 확대 강화되었다. 대구를 비롯한 포항, 상주, 문경, 영천, 김천, 안동 등지에 야체이카를 조직하였고 각 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 결과 각 군 단위 단일 청년동맹의 결성과 강화를 이루어 냈고, 이는 경북청년연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는 농민운동도 활발히 펼쳐 각 지역 단일 농민조합의 결성을 이루었고, 또한 항일단체인 신간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며 각 지역의 신간회 지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의의와 평가]
고려공청 경북위원회는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통일기관이자 지도기관 역할을 하며 조선 사회주의운동 세력의 일제에 대한 저항을 강화하고, 독립운동의 역량 강화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