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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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綠化協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녹화운동을 위한 관변 단체.
[개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는 수원지(水源地) 확보와 혹열(酷熱) 완화책으로 녹화운동을 시작하였다. 대구 유지(有志)가 녹화 협회 설치를 계획하고,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에서는 1933년부터 식수비(植樹費) 확보를 계획하여 녹화운동을 진행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녹화협회(大邱綠化協會)는 대구 지역의 녹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대구녹화협회는 1933년 5월 4일 대구공회당에서 ‘대구녹화협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약 100명이 참석하였으며 다가[多賀] 대구부윤이 좌장을 맡았고, 이시다[石田] 산림과장이 취지를 밝히는 설명을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녹화협회는 1933년 창립총회 당시 회장 서병조, 부회장 기무라 타케타로[木村 竹太郞], 간사 4명[일본인 4명], 평의원 15명[일본인 9명, 한국인 6명]으로 구성되었다. 한국인 평의원 6명은 이상열, 서병화, 김재환, 신현구, 추승화, 서병국이었다. 고문은 대구부윤, 경상북도지사, 내무부장, 재무부장, 대구경찰서장 등이었다. 대구녹화협회는 1933년 가을부터 대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식수를 하여 녹화운동을 전개하려고 하였지만 준비 부족으로 1년 연기되었다. 1933년 여름방학 때 대구공립농림학교[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도로 옆 식수 상황을 조사하게 한 뒤 1934년 봄부터 식수에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1933년 5월 19일 대구부 회의실에서 처음으로 평원(評員) 회의를 개최하였다. 대구녹화협회 회장 서병조의 주도로 1933년도 예산 1만 2450원에 대하여 심의를 하고, 회원들과 기부금 모집에 대하여 협의하였다.1936년에는 재단법인을 설립하기 위하여 기부금 1만 원을 모금하였다. 또한 대구 각처에 분수를 설치하고 분수를 중심으로 소공원을 만들고자 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녹화협회는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대구 지역에서 녹화사업을 주도한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