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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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藥商興業會 |
이칭/별칭 | 대구약업흥업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한약상들의 경제 단체.
[설립 목적]
대구약상흥업회(大邱藥商興業會)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한약상들이 대구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하여 경상감영 객사가 철거되자 일본인들은 객사 주변 땅을 매입하여 도로로 만들었다. 이후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약전골목]으로 이전하여 개설하였다. 대구 약령시 상인들은 전국 제일의 약령시라는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우선 대구 약령시 개시일을 신문에 광고를 내고 전국의 한약상들에게 알렸다. 또한 1909년 약상입규흥업회(藥商入規興業會)를 조직하였다.
약상입규흥업회는 1910년 대구약상흥업회[이칭 대구약업흥업회(大邱藥業興業會)]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대구약상흥업회가 대구 악령시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하였으나 1911년부터 춘영시는 점차 쇠퇴하였다. 더구나 조선총독부가 1914년 「조선시장규칙」을 공포하고 공공단체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가 아니면 시장을 경영할 수 없도록 하여 대구 약령시는 더욱 위축되었다. 결국 1914년 대구약상흥업회는 해체되었고 대구의 한약상들은 대구한약업조합(大邱漢藥業組合)[대구한약업자조합]을 조직하여 대구 약령시의 부흥을 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약상흥업회는 대구 약령시의 개시일이 불규칙한 데 따른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춘영시는 음력 3월 1일~3월 30일까지, 추영시는 음력 11월 1일~11월 30일까지 열도록 합의하였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