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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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立協會 大邱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개항기 대구 지역 최초의 계몽운동 단체.
[개설]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 개화파 지식인들은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하여 발족한 독립협회는 자주독립과 외세의 배격, 내정 개혁을 주장한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였으며, 1898년 서울 종로에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독립협회는 근대사상과 개혁 사상을 지닌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도부를 형성하였고, 열강의 침탈과 수구적 지배층의 압제에 불만을 가진 도시 시민층이 주요 구성원을 이루었다. 또한 학생, 노동자, 부녀자 및 해방된 천민 등 광범한 사회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설립 목적]
독립협회 대구지회는 독립협회의 강령인 자주독립과 충군애국(忠君愛國)을 실현하고, 자주 국권 사상·자유 민권 사상·개혁 자강 사상에 의하여 민족주의·민주주의·근대화 운동을 추진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독립협회 대구지회는 독립협회의 지회 설치 요건을 충족하여 설립되었다. 당시 독립협회는 지회 설립 자격요건을 ‘가산을 능히 다스리며 학식이 유여(有餘)한 자’와 인구 3,000명 이상의 도시에 한정하였다. 또 독립협회는 지회 활동에 대하여 본회의 방침과 어긋남이 없도록 엄격히 감독하였다.
대구에서는 유지들이 주축이 되어 1898년 여름 독립협회에 지회 설립을 요청하였으나 본회의 사정으로 9월에서야 지회 설립이 허가되었다. 이때 독립협회 대구지회 설립을 요청한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독립협회 대구지회의 설립에 따라 본회에서 전개한 개화파의 개혁운동과 대한제국의 개혁 사업이 영남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참여 계층 또한 확대되었다.
독립협회 대구지회가 1899년 각 군 서원(書員)[조선시대에 서리(書吏)가 없는 관아에 두었던 벼슬아치]과 면주인(面主人)[조선시대에, 주(州)·부(府)·군(郡)·현(縣)과 면(面) 사이를 오가면서 심부름하던 사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경상북도관찰사가 혁파하였다. 이에 불만을 느낀 서리(書吏)와 교리(校理)들이 집단 항의를 하며 독립협회 대구지회와 대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독립협회 대구지회는 영남 지역 최초의 독립협회 지회로서 독립협회가 추구하는 목적을 구현하면서 대구 지역 계몽운동의 초석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