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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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聲日報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9월 15일 - 『민성일보』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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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48년 말 - 『민성일보』 폐간 |
최초 설립지 | 민성일보사 - 대구광역시 중구 서문로1가 47 |
성격 | 일간지 |
설립자 | 이목 |
[정의]
1945년 9월 대구에서 창간된 지역 일간지.
[개설]
1945년 9월 15일 창간된 『민성일보(民聲日報)』의 발행인 겸 사장은 이목이었고, 편집인은 도재기였다. 좌익 대변지 역할을 하며 발행되던 『민성일보』는 1946년 대구 9월총파업이 일어나자 1946년 9월 27일 민성일보 노동조합이 제작 거부에 들어가 정간되었다가 1946년 12월 10일 편집국장이던 민영근(閔榮根)이 2대 발행인 겸 편집인이 되어 속간하였다. 대구 9월총파업 당시의 파업으로 인하여 『민성일보』는 대구 9월총파업과 10월항쟁에 대한 보도를 하지 못하였다.
[변천]
민성일보사는 광복 후 좌우 진영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익의 단골 테러 대상이 되어 신문 발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성일보사는 1946년 3월 29일 우익 청년들의 습격을 받았다. 1947년 3월 29일 밤 『민성일보』의 인쇄공장에 권총과 곤봉, 도끼로 무장한 청년 20여 명이 난입하여 활자판을 파괴하고, 간판까지 떼어 갔다. 1946년 6월 26일에도 『민성일보』의 인쇄공장에 테러단이 난입하여 활자판을 뒤엎고 인쇄기를 파괴하고 도주하였다.
1947년 12월 2일 밤 민성일보사는 『신라공보』 인쇄공장, 근로인민당사 등과 함께 우익의 테러를 당하여 사원 중 3명이 중상, 4명이 경상의 피해를 입었다. 민성일보사는 1948년 5월에는 우익의 폭탄 테러를 당하였다. 이 밖에도 배달 업무를 방해당하고 구독자가 협박당하는 일이 잦았다. 『민성일보』는 1948년 10월 25일 기준 발행 부수가 6,700부 정도로 『영남일보』의 2만 3000부에 비하여 턱없이 못 미쳤다. 『민성일보』는 결국 정부수립 후인 1948년 말 폐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민성일보』는 광복 후 좌익의 대변지 역할을 하며 발행되었으나 우익의 테러, 미군정의 언론탄압으로 잦은 휴간과 정간을 거듭하다 정부수립 후인 1948년 말에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