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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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綾城世家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로3길 47-12[서변동 111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충희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전통 가옥.
[개설]
능성세가(綾城世家)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대를 이어 살던 능성구씨 집안의 종가 건물이다. 무태[서변동] 지역에 자리 잡은 능성구씨의 입향조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서변동에 정착한 계암(溪巖) 구회신(具懷愼)[1564~1634]이다. 구회신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두문동칠십이인(杜門洞七十二人) 중 한 명인 문절공(文節公) 좌승정(左政丞) 구홍(具鴻)의 8세손이기도 하다. 구회신은 서변동에 정착하고 2년이 지난 1599년에 무과에 응시하여 합격한 후, 관직이 어모장군(禦侮將軍) 행훈련원첨정(行訓練院僉正)이 되었으나, 조정이 당파 싸움으로 어지러워짐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서변동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능성세가는 구회신의 후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세대를 이어 가며 살던 집이기에 필요할 때 보수하거나 고쳐 짓곤 하였다. 항일 독립유공자인 소봉(小峰) 구찬회(具燦會)[1890~1910]의 생가이기도 하다.
[위치]
능성세가는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1110에 있다. 건물 뒤에는 함지산 망일봉 산자락이 있고 앞에는 서변근린공원이 있다.
[변천]
능성세가는 임진왜란 후에 서변동에 정착한 능성구씨 집안의 전통 가옥이었다. 지금의 능성세가는 1920년에 중건된 집이다.
[형태]
능성세가는 일자형으로 지은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현황]
능성세가는 능성구씨 좌정승공파의 문중 건물인데, 인근에는 송계당(松溪堂), 물소재(勿小齋) 등 능성구씨 문중의 재실이 있다.
[의의와 평가]
능성세가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구회신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산 집이며, 항일 독립유공자인 소봉 구찬회의 생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