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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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東湖洞 聚落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 361-2|380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병섭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청동기시대 -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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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7월 10일~1999년 2월 28일 -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원소재지 |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 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 361-2|380 일대 |
성격 | 마을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
[개설]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大邱東湖洞聚落遺蹟)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칠곡3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7년 7월 10일부터 1999년 2월 28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고상건물지, 돌널무덤, 우물, 집수지, 집석, 유구, 경작지, 환호, 하도 등 청동기시대 마을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많은 자료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의 수혈과 수리 시설, 하도, 경작지 등의 유구도 일부 조사되었다.
[위치]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이 있는 곳은 금호강의 지류인 팔거천에 의하여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의 중앙부에 해당된다. 도덕산[660m], 명봉산[401.7m], 함지산[288m]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어 분지 모양을 이룬다. 팔거천 동안의 충적지에는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 외에도 국우동 유적, 구암동 유적 등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활 유적들이 조사되었다. 남동쪽 함지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에는 삼국시대의 대구 구암동 고분군[사적 제544호]이 있다.
[형태]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60기가 확인되었고, 집자리 무리를 둘러싸는 경계·보호시설인 환호도 4기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평면 형태에 따라 장방형 2기, 말각장방형 1기, 방형 7기, 말각방형 6기, 원형 44기의 집자리로 나누어진다. 집자리 내부 시설에는 화덕자리[爐址]와 중앙 구덩이[中央竪穴], 기둥구멍[柱穴] 등이 있다. 화덕자리는 장방형·방형 집자리에서는 대부분 확인되나, 원형 집자리에서는 3기만 확인된다. 원형과 말각방형의 집자리에서는 중앙 구덩이와 양쪽에 기둥구멍을 가지는 송국리식(松菊里式) 집자리가 28기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중앙 구덩이 없이 양쪽 기둥구멍만 확인되는 새로운 형태의 집자리도 10기 확인되어 동천동식(東川洞式) 집자리로 불리고 있다. 고상건물지는 20기가 확인되었는데, 1×1칸부터 2×10칸까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다. 집자리와 함께 분포하고 있거나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되는데, 농경과 관련된 창고, 망루, 주거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집자리 주변에서 다양한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수혈이 87기, 석기 제작, 물과 관련되는 집석유구가 10기 확인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당시 논산 마전리 유적에서 확인되었던 우물이 4기나 확인되었는데, 돌을 쌓아 만든 석조 우물이다. 경작지는 집자리 무리와 중복하거나 남쪽으로 떨어져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구획을 하고 있는 도랑유구이다. 이러한 형태의 경작지는 인근의 동호동 유적, 국우동 유적, 함지산 너머 서변동 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에서는 집자리나 수혈 등 생활유구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은 빈약한 반면 집석이나, 도랑, 집수지, 하도에서 집중적으로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가 대표적인데, 항아리[壺], 바리[鉢], 사발[鉢], 단지[甕]가 주로 확인되며, 귀때토기[注口土器]와 뚜껑[蓋]도 소량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화살촉, 돌칼, 부리형석기, 재가공된 홈자귀가 다수 확인되었고, 돌칼[石劍], 돌보습[石犁], 숫돌[砥石] 등도 확인되었다.
[현황]
동천동 일대 팔거천 주변 충적지 대부분은 도시화되어 있는데,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도 발굴 조사 완료 후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현재 근린생활시설, 주택, 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에서는 송국리식 집자리를 비롯한 많은 생활유구가 확인되었다. 조사된 유구를 통하여 마을 경관은 주거 구역, 매장 구역, 경작지, 제사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은 청동기시대 중기 팔거천 하류에 넓게 형성된 충적평야 내에서 중심 취락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청동기시대 마을의 정형화된 모델로 마을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