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47
한자 大邱 旭水洞 遺跡一[旭水洞 128]
영어공식명칭 Daegu -dong Yujeok1|Archaeological Site 1 in Uksu-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128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4월 1일~7월 11일 - 대구 욱수동 유적1[욱수동 128]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원소재지 대구 욱수동 유적1[욱수동 128]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128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무덤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삼국시대의 생활 유적과 초기국가시대의 무덤 유적.

[개설]

대구 욱수동 유적1삼덕동-시지 택지 간 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9년 4월 1일부터 1999년 7월 1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 및 무덤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3기, 초기국가시대 독무덤 1기, 삼국시대 수혈유구(竪穴遺構) 18기, 우물 1기, 도로유구(道路遺構) 등이 확인되었고,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반달돌칼[半月形石刀], 숫돌[砥石], 초기국가시대 독널[甕棺], 삼국시대 굽다리접시[高杯], 짧은목항아리[短頸壺], 큰항아리[大壺], 손잡이[把手], 흙구슬[土球], 굽다리사발[臺附碗], 가락바퀴[紡錘車], 토관(土管), 기와 등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욱수동 유적1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128번지에 있다. 욱수동성암산[472m], 안산[470m] 등의 산지와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선정과 선앙부에 자리 잡고 있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어,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욱수동 유적1도 대구 고산 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대구 욱수동 유적1이 있는 곳은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로 고산 선상지의 선앙 부분에 해당한다. 주변으로 시지 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다수 조사되었고, 동쪽 욱수천 건너편 낮은 언덕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Ⅰ과 욱수동·옥산동 토기 가마터가 있다.

[형태]

대구 욱수동 유적1에서 청동기시대 집터는 3기가 확인되었는데, 직사각형과 사각형의 형태를 띤다. 내부 시설로는 2호 집터에서 화덕자리[爐址], 2호·3호 집터에서 기둥구멍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토기 바닥 조각, 숫돌, 반달돌칼,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국가시대 독무덤은 동쪽에 주옹(主甕), 서쪽에 막음옹[副甕]을 설치한 합구식(合口式) 독무덤이다. 주옹과 막음응은 긴달걀모양 옹[長卵形甕]을 사용하였고, 합한 크기는 길이 127㎝이다. 영남 지역에서 조사된 독무덤의 분석 결과로 볼 때 주로 어린아이의 펴묻기[伸展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수혈유구는 18기인데, 사각형에 가까운 정형성을 나타내는 것이 3기[3호·9호·12호]이며, 나머지는 부정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각형의 형태를 띠며, 내부에 화덕자리가 있는 9호 수혈의 경우 주거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 슬래그(slag)가 다량 확인되고, 토관과 소토 및 목탄 부스러기가 다량 확인된 11호·13호·15호·17호·18호 수혈은 작업용 시설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수혈에서는 굽다리접시, 굽다리사발, 짧은목항아리, 큰항아리, 뚜껑, 연질항아리, 토관, 흘구슬, 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물은 평면 형태는 원형을 띠며,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이다. 우물에서는 짧은목항아리, 병, 손잡이, 기와 등의 유물과 말뼈가 다량 확인되었다. 도로유구는 7~8줄의 도랑 형태로 확인되었는데, 수레바퀴 자국으로 추정된다.

[현황]

대구 욱수동 유적1은 발굴 조사가 완료되고 나서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주변 선상지 일대는 택지개발과 도로 조성으로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시지 지구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산 선상지 선앙의 취락과 분묘, 선단부의 취락과 분묘 등 크게 2개의 군으로 나누어지는데, 대구 욱수동 유적1의 주거지는 고산 선상지 선앙 부분에 자리 잡은 취락의 일부로 판단된다. 초기국가시대의 독무덤은 시지 지구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삼국시대 생활 유적은 인근 북쪽에서 시지 지구 택지개발을 앞두고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대규모 생활 유적과 이어지는 유적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고산 선상지 일대에 인간 생활이 지속적으로 집중되어 왔음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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