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005
한자 月谷精舍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로26길 65[상인동 95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일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07년연표보기 - 월곡정사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5년 - 월곡정사 낙동서원 옆으로 이전·신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5년 - 월곡정사 중수
현 소재지 월곡정사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로26길 65[상인동 950]지도보기
성격 강학소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단양우씨 열락당종중(悅樂堂宗中)
관리자 단양우씨 열락당종중(悅樂堂宗中)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월곡 우배선의 강학소.

[개설]

월곡정사(月谷精舍)임진왜란 의병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우배선(禹拜善)[1569~1621]의 생전 강학소이다. 우배선임진왜란 때의 공훈으로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르고, 합천·금산·낙안 군수로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겸사복장(兼司僕將)을 끝으로 고향인 월곡으로 낙향하여 후진 양성을 위하여 1607년에 월곡정사를 세웠다. 그 후 후손들이 대덕서당(大德書堂) 및 열락당(悅樂堂) 종중(宗中)의 종당(宗堂)으로 겸용하였으나, 1995년 11대손 월포 우억기(禹億期)[1921~2010]의 주관으로 대덕서당과 열락당낙동서원 옆으로 이전·신축하였다.

우배선의 본관은 단양,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며, 할아버지는 현감 우봉(禹鳳)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화원·달성·최정산(最頂山)에서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하여 위용을 떨쳤다. 이에 초토사(招討使)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예빈시참봉에 기용되었다. 계속 용감히 싸워 군기시판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1593년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우배선의 거처를 모르는 조정에서는 수소문 끝에 찾아, 1600년 우배선을 금산군수에 명하였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정사를 전적으로 하리(下吏)에게 맡겨 부역이 고르지 못하고 백성들의 유망 사태를 빚는다 하여 파직할 것을 청하자 스스로 사직하였다. 1603년 다시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냈으며, 1604년에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위치]

월곡정사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950 월곡역사공원 내에 있다.

[변천]

하나의 담장 안에 월곡정사·추모재·경인재 3동의 건물이 모여 있는데, 이 전체를 ‘월곡정사’라 부른다. 그 뒤 종중에서 월곡정사를 대덕서당과 열락당종중의 종당으로 사용하다가 1995년 대덕서당과 열락당종중 종당을 인근의 월곡역사공원에 신축하여 옮겨 가고, 현재는 월곡정사만 본래의 자리에 남아 있다.

[형태]

월곡정사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다.

[현황]

월곡정사월곡역사공원 안에 있으며, 열락당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월곡정사는 4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고건물이며 문화재적인 위용을 지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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