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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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黃金洞 遺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산70-3|황금동 25-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섭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조선시대 - 대구 황금동 유적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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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4월 21일~5월 12일 - 대구 황금동 유적 발굴 조사 |
원소재지 | 대구 황금동 유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산70-3|25-6 |
성격 | 생활 유적 |
크기(높이,길이,둘레) | 2m 이상[1·2호]|25~75㎝[3·4호]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황금동 유적(大邱黃金洞遺跡)은 수성구 황금동~만촌동 간 도로 건설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9년 4월 21일부터 1999년 5월 12일까지 22일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위치]
대구 황금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산70-3번지와 25-6번지에 있다. 황금동은 무학산[200m]과 두리봉[216.5m]으로 둘러싸인 산지와 산지 사이의 곡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구 황금동 유적은 두리봉[216.5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있으며, 서쪽으로 경북고등학교가 있다.
[형태]
대구 황금동 유적의 수혈유구는 5기 확인되었는데, 평면 형태는 부정형을 띠고 있다. 1·2호는 2m 이상의 비교적 큰 규모이나 3·4호는 25~75㎝의 소형이며, 5호는 도랑 형태를 띠고 있다. 수혈유구의 성격을 주거용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1·2·3호의 경우 내부에 소토와 목탄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생산 관련 유구일 가능성이 있다. 고상 건물지는 정면 및 측면 1칸의 방형을 띤다. 집석유구는 자연석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형태인데, 7호 집석유구에서는 슬래그가 다량 확인되고 있어 공방지와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대구 황금동 유적의 유물은 대야 형태의 바리와 분청사기 대접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황금동 유적은 발굴 조사 완료 후 도로가 건설되었다. 서쪽으로는 경북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동쪽으로는 두리봉의 서쪽 사면부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 황금동 유적과 관련된 유적이 더욱 분포하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대구 황금동 유적은 두리봉 서쪽 사면 말단부에 조성된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다. 주변으로 관련 유적이 더 조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수혈유구와 집석유구에서 소토와 목탄, 슬래그 등이 확인되어 생산 기능을 담당한 유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