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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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然侃 |
영어공식명칭 | Gu Yeongan |
이칭/별칭 | 성강(聖剛),근와(謹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844년 - 구연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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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17년 12월 15일 - 구연간 사망 |
출생지 | 무태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
거주|이주지 | 무태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서변동 |
묘소|단소 | 구연간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능성(綾城)[綾州] |
[정의]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구연간(具然侃)[1844~1917]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성강(聖剛), 호는 근와(謹窩)이다. 아버지는 구택조(具宅祖)이고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활동 사항]
구연간은 1844년(헌종 10) 대구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에서 태어났다. 자질이 뛰어나 감독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일찍이 과거를 보아 입신양명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과거시험이 공평한 것 같지 않아 뜻을 접었다. 부모상을 마친 뒤에 “뜻을 따르며 부모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이 이제는 그릇되게 되었다. 어찌 차마 다시 과장에 들어가리오”라고 말하고는 오로지 학문에 전념하였다.
구연간은 어릴 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병들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9년간 정성을 다하여 사람들이 효손(孝孫)이라고 하였다.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가 사망한 뒤에도 제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축문을 쓸 때에도 비록 밤이라도 의관을 정제하고 띠를 매고 행하였다고 한다.
구연간은 만년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올리고 문인이 되었다. 지역의 유생들에게 강론하며 향리의 유풍을 진작하다가 1917년 12월 15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구연간의 저술로는 『근와문집(謹窩文集)』이 있다.
[묘소]
구연간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정제산에 있다. 묘갈명은 성균관대사성 김복한(金福漢)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