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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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仁繼 |
영어공식명칭 | Gu Ingye |
이칭/별칭 | 효중(孝仲),치암(癡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607년 - 구인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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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62년 5월 7일 - 구인계 사망 |
출생지 | 순호리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
거주|이주지 | 무태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서변동 |
수학|강학지 | 영모당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
묘소|단소 | 구인계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능성(綾城)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구인계(具仁繼)[1607~1662]의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효중(孝仲), 호는 치암(癡庵)이다. 할아버지는 구대성(具大成)이고, 아버지는 첨정 구회신(具懷愼)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豐川任氏)이다.
[활동 사항]
구인계는 1607년(선조 40)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무태(無怠)[현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서변동]로 이주하여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모당통강제자록(永慕堂通講諸子錄)』에 따르면, 스승 손처눌이 사망하였을 때는 애통함이 심하여 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삼갔고 평생 손처눌의 기일에는 목욕재계하고 소식(素食)하였다고 한다. 구인계는 1662년(현종 3) 5월 7일 사망하였다.
[묘소]
구인계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의 창포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