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73 |
---|---|
한자 | 姜潤玉 |
영어공식명칭 | Kang Yun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강윤옥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5일 - 강윤옥 대구 대명동 만세 시위 참여 |
거주|이주지 | 대명동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강윤옥(姜潤玉)[1889~?]은 1889년에 태어났다.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거주하며 제조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강윤옥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5시 30분쯤 장용암(張龍岩)과 함께 대명동에 있던 공동묘지 북쪽의 대구에서 현풍(玄風)으로 넘어가는 도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서너 차례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공동묘지에는 지금의 중구 수동에 거주하던 최경삼(崔敬三)이라는 사람이 죽은 둘째 딸의 제례(祭禮)를 거행하여 5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다.
강윤옥은 헌병분대장의 지시로 제례 참석자들의 동태를 시찰 중이던 한국인 사법경찰관 오진태(吳鎭台)에게 체포되었으며, 장용암은 도주하였으나 이후 체포되었다. 강윤옥은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1919년 5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기물 파손 혐의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고, 5월 2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