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43 |
---|---|
한자 | 朴木月 |
영어공식명칭 | Park Mokwol |
이칭/별칭 | 박영종(朴泳鍾)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종헌 |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박목월[朴木月][1915~1978]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월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영종(朴泳鍾)이다.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에서 동시 시인이자 시인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대학교수를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박목월은 대구 계성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4년 6월 잡지 『어린이』에 「통·딱딱·통·짝짝」과 『신가정』에 「제비마중」을 발표하면서 일제강점기 소년 문사로 이름을 알렸고, 윤석중과 교유하면서 『주간 소학생』에 「동요 짓는 법」을 연재하였다. 아동문학 잡지 『아동』과 『새싹』, 『어린이신문』 등에 동시를 발표하였다.
박목월은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예술인들과 교유하다가 귀국하였다. 1939년 『문장』에 「길처럼」·「그것은 연륜이다」·「가을 어스름」·「연륜」 등이 추천 완료되어 동시 문단과 시 문단 양쪽에서 활동하였다. 1946년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아동회 이사로 활동하였고, 경북예술가협회 문학부장에 선임되었다.
박목월은 1947년 잡지 『동화』, 1949년 『여학생』을 창간하고 ‘산아방’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하였다. 잡지 『여학생』의 편집은 『청과집』의 공동 저자였던 윤계현·황윤섭 등과 함께하였다. 1948년 아동문화교육연구회 위원, 잡지 『아동』의 주간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박목월은 1946년 무렵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대구 계성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홍익대학교를 거쳐 1962년부터 사망 전까지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박목월은 1978년 3월 24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목월은 1946년 『박영종 동시집』·『초록별』·『호랑나비』를 발간하였고, 1949년에는 『현대동요선』을 출간하였다. 이후 『동시교실-지도와 감상』[1957],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1961], 동시 창작론과 해설을 곁들인 『동시의 세계』[1963] 등을 펴냈다.
박목월은 합동 시집으로 『청록집』[을유문화사, 1946]과 『청과집』[동화사, 1948] 등을 출간하였다. 이후 1954년 『산도화』, 1959년 『난·기타』, 1964년 『청담』, 1968년 『경상도 가랑잎』, 1973년 『사력질』 1976년 『무순』, 1979년 『크고 부드러운 손』 등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목월은 1958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대한민국 문예상 본상[1968], 서울시 예술상[1969] 등 작품상을 받았다.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1968년 신시 60주년을 기념하여 경주 황성공원에 동요 「송아지」를 새긴 노래비가 세워졌으며, 1988년 사후 10주기를 맞아 박목월이 근무하던 한양대학교에 박목월 시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