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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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相轍 |
영어공식명칭 | Chang Sang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10월 17일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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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5년 7월 - 장상철 대구광문사 사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6월 - 장상철 대한자강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5월 - 장상철 대한협회 대구지회 평의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11년 5월 - 장상철 일본시찰단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3년 - 장상철 매일신보사 경북지국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장상철 대구 자제단 발기인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장상철 중추원 참의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930년 10월 20일 - 장상철 사망 |
출생지 | 덕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
거주|이주지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친일반민족행위자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중추원 참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장상철(張相轍)[1870~1930]은 1870년 10월 17일 대구부 덕산정 131번지[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금연상채회와 대한협회 대구지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이후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적을 이어 갔다.
[활동 사항]
장상철은 1905년 7월 계몽운동 단체인 대구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 내 문회(文會)를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변경하면서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고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를 조직할 때 장상철은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6월 대한자강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1908년 5월에는 대한협회 대구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9월부터 1909년 3월까지 대구 사립보명학교의 교장으로 교육계에 종사하였다.
장상철은 1911년 5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주최하는 일본시찰단에 참가한 뒤 친일 협력의 태도를 보였다. 1913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사의 경북지국장이 된 뒤 1917년 매일신보사로부터 지국 발전의 성과가 현저하다는 평가를 받고 은시계를 수여받았다. 장상철은 3·1운동 시기인 1919년 4월 대구 자제단(自制團)의 발기인이 되어 독립 만세 운동을 방해하였다. 또 1919년 9월 조선총독부 주최의 시국강연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여하였다. 1920년에는 유도진흥회 경북지부 총무로 활동하며 경북 유림 내지[일본] 시찰단에 참가하였다. 1920년 친일단체인 국민협회 경북지부 평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7년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장상철은 1928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으며, 1930년 10월 2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