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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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廉隴山 |
영어공식명칭 | Yeom Nongsan |
이칭/별칭 | 염경은(廉敬恩),앵무(鸚鵡)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대구기생조합과 달성권번을 운영하였던 경영인.
[개설]
염농산(廉隴山)[1860~1947]은 1860년 8월 18일 아버지 염천홍(廉天弘)과 어머니 류성향(柳星香)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염경은(廉敬恩), 호는 앵무(鸚鵡)이다. 1913년에 염농산으로 정식 개명하였다. 『조선창극사』에 박기홍과의 일화가 전하고, 『조선해어화사』에도 등장하는 구한말 대구의 최고 기생이었다. 경상감영 교방의 행수기생 출신으로 대구기생조합과 달성권번을 운영하며 대구의 전통예술의 계승과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활동 사항]
염농산은 1910년 5월 무렵 지금의 대구광역시 기생들의 기생조합소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짐작된다. 대구기생조합과 달성권번은 중구 상서동 일대에 있었는데, 1927년에 대구기생조합이 합자회사 달성권번으로 바뀌었다. 염농산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거금 100원을 의연금으로 쾌척하여 서상돈, 김병순, 정재학 등이 기만 원씩 출연하기로 결의하도록 하였다.
염농산은 1917년에 시작하여 1919년에 완료한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용암면(龍巖面) 두리방천의 복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두리방천은 1911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염농산은 1937년 교남학교를 위하여 상당한 재산을 기부하였다.
염농산은 1947년 4월 11일 대구광역시 중구 화전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염농산의 묘소는 없고, 염농산의 아버지 묘소가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야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면사무소 인근에 1919년 5월에 세운 ‘염농산제언공덕비(廉隴山堤堰功德碑)’가 있다. 2017년 9월 7일 성악 연주 전문 단체인 보엠아트[단장 김지영]에서 창작 오페라 「앵무뎐」[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을 무대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