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행 대구지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825
한자 朝鮮銀行 大邱支店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11[문화동 11-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조선은행 대구지점 개설
이전 시기/일시 1922년 - 조선은행 대구지점 대구시 중구 대안동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 11-1로 이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6월 12일연표보기 - 조선은행 대구지점 해산
최초 설립지 조선은행 대구지점 -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조선은행 대구지점 -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11[문화동 11-1]지도보기
성격 은행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에 있던 조선은행의 지역 지점.

[개설]

조선은행 대구지점(朝鮮銀行大邱支店)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중앙은행을 담당하였던 조선은행이 대구에 설립한 지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대한제국 시기 운영되었던 한국은행을 개칭하여 조선은행을 설립하였다. 불안정한 조선 경제가 일본 본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선 은행권을 따로 발행하면서도, 그 가치를 일본 은행권과 동일하게 함으로써 일본 자본의 조선 침투를 용이하게 하고 양 지역의 경제적 통합을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1922년까지 조선은행 대구지점한국은행이 사용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새로이 현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동 11-1에 총 공사비 15만 원으로 벽돌 건물을 신축하여 1922년부터 사용하였다. 당시 르네상스풍의 벽돌 2층 건물의 설계는 일본인 나카무라[米中村與資平]가 하고 건축공사는 대구 건축회사 야시로쿠미[屋代組]가 맡았다.

조선은행 대구지점은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張鎭弘) 의사의 의거 장소인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장진홍 의사의 의거 배후로 이육사(李陸史) 시인이 지목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건립 경위]

1911년 8월 「조선은행법」이 공포되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경영할 중앙은행의 필요에 따라 대한제국 시기 중앙은행이던 한국은행조선은행으로 개칭하였다.

[변천]

1905년 제일은행 부산지점 대구출장소가 1909년 한국은행으로 인계되었고,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은행은 해방 이후에도 그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1950년 6월 12일 설립되면서 조선은행은 소멸되고 대구지점도 한국은행 대구지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구성]

조선은행 창립 당시에는 경성에 조선은행 중앙지점을 두고, 7개의 지역 지점을 두었다. 1943년 말에 이르면 조선에 17개, 만주에 4개, 일본에 8개, 중국에 39개의 점포로 확장되었다. 방대한 점포와 인력을 확보한 조선은행은 일본 금융의 대륙 진출에 첨병 역할을 수행하였다.

[현황]

1950년 6월 12일 대한민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설립되어 조선은행 대구지점도 폐쇄되었다. 대구지점 건물은 해방 후 한국신탁은행, 1976년 8월 서울신탁은행에서 사용하다가 현재 하나은행 대구기업금융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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