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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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山百貨店 |
영어공식명칭 | Gangsan Department Stor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길 27-8[교동 6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에 있었던 백화점.
[개설]
1979년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에 개장한 향토 백화점으로 경영 악화로 2004년 소유주가 바뀌었다. 한때 유명 명품 등 외국 제품을 판매하면서도 전성기를 누렸으나 2004년 파산하였다.
[건립 경위]
강산백화점의 모체는 강산면옥이다. 강산면옥은 1958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피난 온 송익두가 서문시장 솥전거리에 문을 연 대구 최초의 평양식 냉면 전문점이다. 1958년 강산면옥 본점이 교동시장으로 이전하였으며, 1979년 강산면옥 본점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을 지어 강산백화점을 개장하였다.
한편, 교동시장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 온 피난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대구역 주변에 자리 잡았으며, 교동과 동문동 일대에는 피난민 임시 수용소가 많았다.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하여 교동 지역을 중심으로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점차 시장으로 모습을 갖추어 교동시장이 되었다.
[변천]
1950년대 피난민들이 개척한 교동시장은 보따리 무역, 밀수품, 미군 부대 PX에서 흘러나온 외제 상품을 취급하면서 수입품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1979년 강산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고급 의류와 외국 구제품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에 파견되었으며, 건설 노동자들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외국 제품들이 강산백화점에서 주로 판매되었다. 그 당시에는 외국 여행이 어렵고 사치품은 수입이 금지된 시절이라 부유층 여성들이 혼수 마련을 위하여 많이 찾았다. 특히 강산백화점 인근에는 동아백화점과 송죽미용실 그리고 대구회관 등 고급 음식점과 다방이 있어 강산백화점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외국 제품의 수급이 원활하여지고, 각각 반월당과 대봉동에 들어선 동아쇼핑센터와 대구백화점 프라자점의 영향으로 중심 상권이 동성로에서 반월당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백화점마다 명품관이 생기자 강산백화점과 교동시장은 쇠퇴하였다.
강산백화점을 건립한 송익두가 1985년에, 송익두의 아내 원도일이 2003년에 타계하면서 강산면옥은 장남 송관백을 거쳐 손자 송국도에게로 이어졌다. 송국도는 공격적인 투자로 1993년 대구백화점 프라자점, 1996년 동아백화점 수성점에 이어 2000년에는 서울 신사동으로 진출하였지만 소비 위축과 경기 급락 등으로 인하여 2004년 파산하였고,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구성]
강산백화점 건물은 대지면적 668.6㎡, 건축 면적 527.5㎡, 매장 면적 1,558.7㎡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 판매 시설과 근린생활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 현재 지상 1층과 2층은 진도모피 대구 직영점이 사용하고 있고, 지상 3층에는 강산면옥 본점이 입점하여 있다.
[현황]
강산백화점 건물 지상 3층에 있는 강산면옥도 주인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유명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근에는 경부선 대구역, 대구도시철도 1호선 대구역과 중앙로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한 인근에 동성로와 향촌문학관,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기념공원, 롯데백화점 대구점, 대구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대구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