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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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小有亭 題詠錄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충희 |
간행 시기/일시 | 2017년 - 『소유정 제영록』 대구광역시향고재단에서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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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발굴 시기/일시 | 2017년 - 『소유정 제영록』 구본욱이 발굴 |
소장처 | 인천채씨 미대문중 -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 |
간행처 | 대구광역시향교재단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112[남산1동 735-4]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채응린 등 |
편자 | 구본욱 |
간행자 | 대구광역시향교재단 |
권책 | 1권 1책 |
행자 | 12행 15자 |
규격 | 30.0×22.0㎝ |
권수제 | 소유정제영록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소유정과 관련된 조선 후기 시문집.
[개설]
소유정(小有亭)은 채응린(蔡應麟)[1529~1584]이 금호강 강변에 있는 왕옥산 언덕에 지었던 정자이다. 소유정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 채응린의 아들 채선길(蔡先吉)[1569~1646]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채응린은 16세기 대구에서 퇴계 이황의 성리학 학풍이 퍼져나갈 때 선도적 입장에 있었던 학자였기 때문에 제자가 많았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소유정이 불에 타 버렸기 때문에 채응린의 시 한 수 외에는 전하는 것이 없었다. 『소유정 제영록(小有亭題詠錄)』에 전하는 시는 임진왜란 이후 소유정이 중건된 이후의 시이다. 소유정에서 금호강을 내려다 보는 경관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소유정을 찾아온 조선 후기의 선비들은 많은 한시를 남겼다.
[저자]
채응린은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이 건립되었을 때 강학에 참여한 학자이다. 27세에 소과에 합격한 후에 경전과 성리학을 공부하여 이름난 학자가 되어 많은 후학들을 길러 내었다. 소유정을 방문하여 시를 남긴 사람은 대체로 채응린 또는 채응린의 아들 채선길(蔡先吉)과 교분이 있던 대구 지역의 학자들이다.
[편찬/간행 경위]
『소유정 제영록』은 필사본 형태로 채응린의 후손인 인천채씨 미대동 문중에 보관되어 왔는데, 2005년에 구본욱이 채응린의 후손으로부터 연구 자료로 제공받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구본욱은 『소유정 제영록』에 『소유정 회화록』을 첨부하여 2017년에 대구광역시향교재단에서 영인본 책자로 발행하였다.
[형태/서지]
『소유정 제영록』은 90여 명의 선비들이 지은 시를 기록한 필사본인데, 필체가 계속 달라지는 것으로 보아 시를 지은 사람이 기록한 필사본 책이다. 30.0×22.0㎝ 크기에 12행 15자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소유정 제영록』에는 소유정을 건립한 채응린과 소유정을 방문한 90여 명이 지은 시 126수가 실려 있다. 『소유정 제영록』에 실려 있는 시들은 대체로 소유정과 소유정에서 바라본 금호강의 경관을 읊은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에 금호강 연안에는 강론과 휴식을 위하여 많은 정자가 건립되었다. 『소유정 제영록』은 그 무렵에 금호강 연안의 정자에 어떤 선비들이 모였고, 당시 선비들의 문학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