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465
한자 花樹亭
이칭/별칭 포금정(抱琴亭)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로24길 22-35[동변동 23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90년연표보기 - 포금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28년 - 포금정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포금정에서 화수정으로 개칭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2년 - 화수정 중건
현 소재지 화수정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로24길 22-35[동변동 234-1]지도보기
원소재지 화수정 -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로24길 22-35[동변동 234-1]
성격 정자
양식 목조 기와집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능성구씨 무태동변 문중
관리자 능성구씨 무태동변 문중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화수정(花樹亭)[능성구씨(綾城具氏)]은 1690년(숙종 16) 증(贈) 호조참판 구도징(具道徵)[1667~1717]이 건립하였다. 구도징은 ‘두문동 72현‘인 구홍(具鴻)의 후예이며, 임하(林下)에 은거하며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였다. 처음에는 ‘포금정(抱琴亭)’으로 편액(扁額)하였는데, 1901년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방문하여 ‘화수정(花樹亭)’으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동생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에게 대자(大字)로 쓰게 하여 편액하게 하였다. ‘화수(花樹)’란 중국 당나라 때 위씨가(韋氏家)의 친족 모임을 칭하는 말이다. 이후 문중의 모임, 화합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경도재(景陶齋) 우성규(禹成圭)는 ‘화수정 기문’에서 “연재(淵齋) 송(宋) 좨주[祭酒]가 여기에 올라 ‘화수정(花樹亭)’ 세 글자로 이름을 짓고, 그 아우 심석(心石)이 현판을 써서 이 정자가 배나 면모를 빛냈다”라고 하였다. 1900년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방문하였으며,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기문이 있다. 근와(謹窩) 구연간(具然侃), 금우(琴愚) 구연우(具然雨)·돈와(遯窩) 구태서(具泰書) 부자, 죽하(竹下) 구성서(具晟書), 심석재 송병순, 시암(是菴) 이직현(李直鉉), 심재(心齋) 조긍섭(曺兢燮), 금은(琴隱) 하동규(河東奎), 취헌(翠軒) 이영호(李榮浩), 기헌(寄軒) 조병선(曺秉善)의 시가 있다.

[위치]

화수정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로24길 22-35에 있다.

[변천]

화수정은 1690년에 건립하였으며, 1828년(순조 28) 중건하였다. 1901년 ‘화수정’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2002년에 중건하였다.

[형태]

화수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남향 목조 기와집이다.

[현황]

화수정은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강당에는 기문과 시가 편액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수정은 항일 사상가인 송병선, 송병순, 최익현과 독립운동가인 이직현 등이 방문한 유서 깊은 곳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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