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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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臥龍山 九曲詩 |
영어공식명칭 | A poem reciting Waryong Mountain's nine valley |
이칭/별칭 | 와룡산구곡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호 |
[정의]
근대 유학자인 신성섭이 대구 와룡산 아홉 계곡을 주제로 읊은 한시.
[개설]
「와룡산구곡시(臥龍山九曲詩)」의 저자 신성섭(申聖燮)[1882~1959]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명숙(明淑)이고, 호는 학암(鶴菴)이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927]의 후손이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1869~1943]의 문하에서 학업을 익혔다. 저서로 『학암집(鶴菴集)』이 있다.
「와룡산구곡시」의 배경이 되는 와룡산(臥龍山)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한 산이다. 대구광역시 서구, 달서구, 달성군에 걸쳐 있는 산이며 금호강(琴湖江)이 맞닿아 있다. 『대구읍지(大邱邑誌)』에 따르면, 와룡산은 대구부의 서쪽 10리[약 4㎞]쯤에 위치하고, 산 아래에 옥연(玉淵)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옥연에서 용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룡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와룡산의 구곡(九曲)은 와룡산 내에 존재하는 계곡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와룡산 정상에서 북쪽·북서쪽·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금호강의 아홉 굽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신성섭이 와룡산과 맞닿아 흐르는 금호강의 아홉 굽이를 ‘와룡산 구곡’으로 설정하고 경영하였던 곳이다.
[구성]
「와룡산구곡시」는 아홉 수(首)의 칠언절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와룡산구곡시」의 첫 번째 수는 제1곡 ‘사수(泗水)’를 읊은 시이다. 사수는 와룡대교가 놓여 있는 금호강이며, 북구 사수동 일대이다. 와룡구곡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신성섭은 사수를 원두(源頭)로 설정하였다.
두 번째 수는 제2곡 ‘송도(松濤)’를 읊은 시이다. 송도는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용사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금호강 가에 솟아 있는 봉우리와 그 골짜기를 읊었다.
세 번째 수는 제3곡 ‘해랑(海浪)’을 읊은 시이다. 해랑은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방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현재 해랑교가 놓여 있는 일대이다. 금호강 해랑에 떠 있는 낚싯배와 꽃향기 가득한 아침 봄 경치를 읊었다.
네 번째 수는 ‘용두(龍頭)’를 읊은 시이다. 용두는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서재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용의 머리처럼 솟은 봉우리와 풍광 속에 녹아든 자연의 이치를 읊었다.
다섯 번째 수는 ‘학림(鶴林)’을 읊은 시이다. 학림은 달성군 다사읍 박곡리와 서재리, 세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학림을 지세(地勢)가 깊고 그윽하여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 묘사하였다.
여섯 번째 수는 ‘계월(溪月)’을 읊은 시이다. 계월은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와 세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학림을 지나 계월에 이르면 물굽이가 완만하고 폭이 넓어져 물길이 잔잔하고 탁 트이는 전경이 보인다. 계월의 배 위에서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과 달을 맞으며 느끼는 한가로움을 읊었다.
일곱 번째 수는 ‘백석탄(白石灘)’을 읊은 시이다.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와 세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백석탄 일대에는 과거 이강서원(伊江書院)이 있었다. 이강서원은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사들이 강학 활동을 펼쳤던 서원 중 한 곳이다. 신성섭은 잠시 배에서 내려 과거 선현들의 자취를 그리며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감각적인 시어로 묘사하였다.
여덟 번째 수는 ‘선사(仙槎)’를 읊은 시이다. 선사는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와 세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과거 선사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이 주변으로 마을과 들판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와룡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부터 선사 지역은 뱃놀이의 명소였기 때문에 많은 유람객과 시인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신성섭은 자연과 인간이 기이하게 어울려 있는 주변 풍광을 읊었다.
아홉 번째 수는 ‘청천(晴天)’을 읊은 시이다. 청천은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와 세천리 사이를 흐르는 금호강이다. 청천을 돌아 곧장 내려가면 낙동강(洛東江)과 합류한다. 금호강에서 와룡산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굽이다. 바라보이는 전경은 탁 트인 하늘과 어우러진 산을 둘러 흐르는 금호강이다. 신성섭은 청천의 경치를 읊으며 유자로서의 포부를 드러내었다.
[특징]
「와룡산구곡시」는 신성섭이 와룡산에서 바라보이는 금호강의 전경과 금호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이는 주변 경치를 읊은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신성섭의 만년의 작품이라 추정되는 「와룡산구곡시」는 조선 후기 번성하였던 구곡시(九曲詩)가 20세기 들어서도 창작되고 음영(吟詠)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와룡산구곡시」에서는 굽이의 명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현재 금호강의 굽이가 과거와 많이 달라져 각 굽이의 정확한 지점을 고증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몇몇 굽이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굽이의 위치를 유추하여 지정한 것이다. 보통의 구곡시는 하류에서부터 상류로 올라가며 구곡을 선정하는데, 와룡산 구곡은 금호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며 구곡을 선정한 것이 특징적이다. 신성섭이 제1곡 원두를 사수(泗水)로 삼고 하류로 내려가면서 구곡을 선정한 것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 대한 추숭을 나타낸 것이다. 「와룡산구곡시」는 도(道)의 적용과 발현을 금호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빗대어 노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