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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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民總力慶北聯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지역에 설치된 국민총력조선연맹 소속 지부.
[설립 목적]
1939년 9월 1일에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서 이루어진 총동원 관련 운동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 1940년 6월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서유럽을 제패하는 듯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은 1940년 7월 26일에 「기본국책요강」을, 7월 27일에는 「세계 정세의 추이에 따른 시국처리요강」을 발표하여 ‘대동아 신질서의 건설’, ‘국내 태세의 쇄신’, ‘강력한 신정치체제의 확립’을 결정하였다.
1940년 9월 삼국동맹이 체결되면서 제2차세계대전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일본은 국가체제를 ‘고도국방국가(高度國防國家)’로 전환하여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일본에서는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 조선에서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을 결성하여 대응하였다.
[변천]
일제는 1940년 10월 16일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해체하고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발족하였다.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지방 조직은 1940년 10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결성되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1940년 11월 1일에 국민총력경북연맹이 결성되었다. 1945년 7월 8일에 조선국민의용대가 조직되었고, 1945년 7월 10일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선국민의용대에 흡수되면서 국민총력경북연맹도 사라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조선국민조직신체제요강」에 입각하여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흡수·통합하여 국민총력운동을 실시하였다. 국민총력운동은 신도실천(臣道實踐)·멸사봉공·국가지상주의의 구호 아래 조선 사회의 모든 부문을 천황에 귀일되도록 재편하여 전쟁 목적에 합치하도록 일원적 조직을 만들고 동원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대구 지역에서는 박중양·장직상·서병조 등이 국민총력경북연맹에 적극적으로 가입·참여하였다. 박중양·장직상·서병조 등은 1938년에 설립된 국민정신총동원연맹뿐 아니라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던 인물이다. 서병조는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이사로 참여하였다. 장직상 역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평의원 겸 경제부 경제위원을 역임하였다.
[현황]
1942년 4월 1일 국민총력경북연맹에는 부군도 연맹수 24개, 읍면 연맹수 241개, 정동리 부락 연맹수 6,158개, 호대표 반원수 46만 1,337개, 각종 연맹 수 1,247개가 있었다. 국민총력경북연맹은 국민총력전남연맹, 국민총력경기연맹을 제외하고 규모가 가장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