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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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巴山洞 由來碑 |
영어공식명칭 | Pasan-dong Yuraebi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203길 3[호산동 984-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현정 |
건립 시기/일시 | 2011년 11월 10일 - 파산동 유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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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산호경로당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203길 3[호산동 984-4] |
성격 | 마을 유래비 |
재질 | 석재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에 있는 마을 유래비.
[개설]
파산동 유래비는 2011년 11월 10일 세워진 유래비이다. 파산동의 옛 이름은 ‘머무동’ 또는 ‘머무강창’이다. 머무동은 금호강으로 올라오던 소금 배가 머무는 동네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파산동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동명인데, 파산동과 파호동 사이의 돌무덤에 많은 뱀이 살았다고 한다. 파산동은 원래 대구부 서하면(西河面) 소속 파산리였다. 1910년 대구부 성서면(城西面) 파산동에서 1914년 달성군 성서면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 대구시로 들어왔다가 1963년 다시 달성군이 되었다. 1981년 대구직할시 서구 파산동, 1988년 대구직할시 달서구 파산동이 되었고, 1995년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산동이 되었다. 2005년 동 이름을 호산동으로 변경하였다.
[건립 경위]
1984년에서 2012년까지 5차에 걸쳐 성서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이곡동, 신당동 등 성서 일대는 과거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공단과 관공서, 아파트단지 중심의 신도시로 변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을이 공단에 편입되는 등의 이유로 마을의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였던 성서 지역 주민들은 옛 마을을 기리는 마음에서 마을 유래비를 세우기 시작하였는데, 1992년 망정부락 유적비를 비롯하여 신당동 유래비, 갈미 유허비, 사령봉 유래비 등 열 기 이상의 유래비가 반경 2㎞ 안에 세워졌다. 2011년 세워진 파산동 유래비에 새겨진 내용을 따르면, 마을의 변화에 따라 파산동 일대에 새로이 입주하는 주민들과 기업들이 동 이름에서 ‘파산(破産)’이 연상된다고 하여 금호강의 호 자를 따서 호산동(湖山洞)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런 사연을 후세에게 전하고자 파산마을 표지석과 함께 유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위치]
파산동 유래비는 대구도시철도 2호선 강창역 1번 출구를 지나 대구광역시 달서구 호산동 984-4에 있는 산호경로당 옆에 파산마을 표지석과 함께 있다.
[형태]
파산동 유래비는 기단 위에 표지석을 세운 형태이다. 옆에 있는 파산마을 표지석이나 인근 마을 유래비와 비교하면 크기가 상당히 작다.
[금석문]
마을표지석건립에 대하여
우리 파산마을은 약 800여 년 전 농경사회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오던 유교의 전통과 유적이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수년전만해도 파산(巴山)동이란 법정동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만, 지역발전으로 입주한 주민 및 기업들이 도산의 의미가 있다는 편견에 따라 호산동으로 개명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고서(古書)에 의하면 巴山이란 풍수지리학적으로 용의 형상을 한 용산(龍山)의 서쪽 산자락에 자리한 큰 인재가 배출된다는 지명의 뜻을 지닌 마을 이름을 표지석으로 건립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합니다.
2011. 11. 10.
巴山마을 주민일동
[현황]
파산동 유래비와 파산마을 표지석 옆에는 ‘단양우석주수도시설기념비(丹陽禹錫柱水道施設紀念碑)’와 ‘김공휘찬수새마을기공비(金公諱灒秀새마을紀功碑)’가 있다.
[의의와 평가]
파산동 유래비에는 마을 이름의 의미와 이름을 변경하게 된 사연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