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8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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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符仁寺 |
영어공식명칭 | Buinsa Temple |
이칭/별칭 | 부인암(夫人庵),夫仁寺(부인사)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신무동 356-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
[개설]
부인사(夫人寺)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에 있는 신라의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보기도 한다.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의 소장처였던 부인사지(符仁寺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부인사는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인사 연기설화(緣起說話)에 의하면 여왕이 친히 신라의 오악(五岳) 중에서 중악인 팔공산에 와서 기도하니 도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어 국난을 물리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라 했다. 이에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고 이듬해 부인사를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또 옛날부터 선덕묘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는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였다. 불교가 번창하였던 신라와 고려시대 한때는 80여 동의 건물과 39개 암자를 거느리고 약 2,000명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에 이르기까지 부인사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유하였던 곳일 뿐만 아니라, 국내 유일 승시(僧市)가 개설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반면에 고려 후기인 1203년(신종 6)에 무신 정권에 반대하는 ‘부인사(符仁寺) 승도의 난(僧徒의 亂)’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부인사라는 사찰 이름은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비롯한 고려시대 문헌에는 ‘符仁寺(부인사)’로 쓰고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 등 기록에는 ‘夫人寺(부인사)’로 쓰고 있다. 그러나 18세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夫仁寺(부인사)’로 쓰고 있다.
이렇게 대찰이었던 부인사도 조선시대 억불정책의 질곡을 벗어날 수 없었다. 1832년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와 1937년 『교남지(嶠南誌)』에는 ‘부인사’가 쇠퇴하여 ‘부인암(夫人庵)’으로 전락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부인사는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 터에 중창했다. 원래 부인사 절터는 포도밭이 되었고, 현재 부인사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에 금당좌로 추정되는 유적이 남아 있다. 6·25전쟁 때 불타버린 것을 1959년에 중건했다. 이후 1986년에 연성타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부인사에서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부 남았던 것을 1930년대 초에 중건한 선덕여왕숭모전(善德女王崇慕殿)에서 「선덕여왕의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주민과 사찰 측 및 경주김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왔다. 1987년부터는 지역 축제 형태로 진행이 되다가 2015년 제29회부터는 2014년에 결성된 부인사선덕회가 주관 단체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축제의 의미로 쓰던 제(祭)를 불가의 의식인 재(齋)로 행사명을 바꾸어 개최하였다. 재가불자 모임인 부인사선덕회는 동화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자비의 집’에 후원금을 내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지장기도, 신중기도, 삼재기도, 인등기도, 동지기도, 백중기도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삼사 성지 순례 행사도 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부인사 사역(寺域)은 크게 둘로 나눈다. ‘부인사지’, 석탑, 석등과 같이 문화재가 있는 옛날 지역과 최근에 새로 조성한 사역으로 나눈다. 사역 앞쪽은 옛날 지역이고, 뒤쪽이 새로 조성한 사역이다. 부인사 입구 쪽에 사적비와 부도가 있고, 그 뒤로 ‘부인사지’가 있으며, 축대 위로 요사와 금당터가 있고, 금당터 앞에 동탑과 서탑, 그리고 맞은편에 석등이 있다. 새로 조성한 사역은 두 단 석축으로 나누어 조성하였는데, 첫째 단에는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왼쪽에 심검당(尋劍堂)이 있고, 그 앞쪽에 주불전의 출입문 격인 2층 누각의 삼광루(三光樓)가 있다. 삼광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삼광루를 오르면 두 번째 단으로 부인사의 주불전인 대웅전(大雄殿)이 전면에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좌측에 묘심원(妙心院), 명부전(冥府殿), 우측에 일화선원(一花禪院), 맞은편에 삼광루와 더불어 ‘ㅁ’형을 이루고, 대웅전 뒤쪽 좌측에 산신각(山神閣), 우측에 영산전(靈山殿)이 각각 있다. 또 삼광루 우측 앞에 한주실(閑住室), 좌측 앞에 현음각(玄音閣)이 있고, 부인사 좌측 입구 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선덕여왕을 모시는 숭모전(崇慕殿)이 있다.
[관련 문화재]
부인사에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3점과 문화재자료 1점이 있다. 유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제16호인 ‘부인사 석등(夫人寺石燈)’과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부인사 서탑(夫人寺西塔)’, 유형문화재 제28호인 부인사 부도(夫人寺浮屠)가 있다. 부인사 서탑은 1964년에 흩어진 부재들을 모아 복원했으나, 부인사 동탑은 기단부 일부만 구재를 사용하여 건립하였다. 부인사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한 면에 ‘은통당(隱通堂)’이라 새겨져 있으며,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부전 앞의 문화재자료 제22호인 ‘일명사지 석등(逸名寺址石燈)’은 부인사 동남쪽 200여 미터에 있던 암자 터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을 모아 복원하였는데, 암자의 이름을 몰라서 ‘일명사지’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