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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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郡民- 自治 要求 鬪爭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 성서면, 유가면[현 유가읍] 주민들이 식민 지배 당국을 대상으로 한 자치 요구 투쟁.
[역사적 배경]
일제 강점기 식민 권력은 조선에 일방적인 식민 지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군민들은 경제적 이해나 면장 임명 등에 있어 자신들의 요구를 제기하여 지방 통치에 영향을 미쳤다.
[경과]
1925년 달성군 구지면 소작인들은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과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에 소재한 제20사단 육군 연습지에서 소작하고 있었다. 육군으로부터 이곳 관리를 위임받은 창녕군이 달성군 구지면 소작농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소작지를 운영하였다. 이에 달성군 구지면 소작 농민들이 대표를 선정하여 사단장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였다. 1925년 1월 달성군 성서면 주민들은 성서면장이 악덕 지주의 앞잡이가 되어 직접 소작인에게 지세를 거둔 것에 대해 면민 대회를 개최하여 면장 불신임을 결의하였다.
달성군 유가면 금동에서는 구장 선임 문제를 놓고 동민 추천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임명되는 것에 대해 반발하며 갈등을 일으켰다. 곧 달성군 유가면 금동에서 10년 동안 구장을 지낸 이주칠(李周七)이 개인 사정으로 사임하게 되자 동민들이 무보수로 구장을 맡아 보겠다는 유가 공립 보통 학교 학무 위원 김영탁(金永卓)을 동민 연서로 면사무소에 추천하였고, 면사무소는 이러한 동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규영이란 인물을 군 당국에 추천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달성군 유가면 면장의 입장을 보면, 구장 임명은 관청의 권리인데 동민의 의견대로 한다면 민선이 아닌가라며 권위적인 입장이었던 것이다.
[결과]
달성군 구지면 소작인들의 제20사단 육군 연습지 소작료 문제는 창녕군 대합면장이 군청에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달성군 성서면의 경우는 면장 해임 등의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면장에게 저항할 만큼 면민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달성군 유가면의 경우도 구장 선임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면장의 권리에 대해 면민들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조선 총독부의 식민 권력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던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행정 요구를 지방 통치에 반영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