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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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論工小作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논공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개설]
논공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4년 소작권 반환 투쟁,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달성군 논공면 소작인들의 권익 옹호와 신장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구체적으로 지세 등 일체 공과금 불납, 소작료 반분, 소작료 운반 왕복 30리, 무상 노동 불응 등이 목표였다.
[변천]
1923년 대구 노동 공제회의 농민 운동을 활동 목표로 정립하고, 가창 소작인 조합의 소작 투쟁에 영향을 받아 논공소작조합이 결성되었고, 1925년 달성군 각 면 소작인 조합이 낙작인회로 연대해 지주의 부당한 조치에 투쟁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3년 내지 1924년에 달성군 논공소작조합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논공면의 소작인 조합은 달성군의 다른 면과 달리 1924년 열린 경상북도 도청 주최 지주 간담회의 연장선상에서 관 주도로 결성되는 특징이 있었다. 곧 1924년 10월 무렵 면장 이영환(李暎煥)이 직접 나재연(羅在淵), 김용욱(金容旭) 등을 동원해 소작 조합을 결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작 조합의 결성 계기가 어떻던 논공소작조합에서도 지세 불납 동맹을 결성해 지주에 대항하였다. 이에 달성군 논공면에 토지를 소유한 박병열(朴炳兌), 곽재헌(郭在憲) 등의 부재지주들은 소작지를 이작시켜 버리는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박병태(朴炳兌)는 최화원(崔化遠) 외 50명의 42두락을 이작시켰고, 곽재헌은 라채구 외 14명의 31두락을 이작시켰다. 서우순(徐佑淳)은 김용형 외 4명의 17두락, 박동화(朴東華)는 장남규 외 2명의 6두락, 이경옥(李敬玉)은 장유복 외 2명의 8두락, 김영옥은 낙석준 외 4명의 16두락을 이작시켰다. 그 밖에도 5명의 소작인, 김도윤 외 9명의 27두락 등이 이작되었다. 이 중 곽재헌은 사립 인흥 학교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달성군 논공면의 소작인 조합 간부들은 지주들에게 이작된 경지의 환작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논공소작조합은 1925년에 달성군의 다른 면 소작인 조합과 연합하여 낙작인회를 결성하고, 소작지 환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의의와 평가]
논공소작조합의 소작 투쟁을 통해 농민들은 1920년대 반일 민족 운동의 주체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