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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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之珩 |
영어공식명칭 | Suk Jihyeong |
이칭/별칭 | 숙진(叔珍),수현(壽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화원(花園). 자는 숙진叔珍), 호는 수현(壽峴).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석광필(石光弼)이고, 증조할머니는 의인(宜人)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증장예원 판결사(贈掌隷院判決事) 석현(石玹)이며, 할머니는 백서순(白瑞淳)의 딸 숙부인 직산 백씨(稷山白氏)이다. 아버지는 용양위 좌부장(龍驤衛左副將)을 지낸 석경하(石擎廈)이며, 어머니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변인기(邊仁己)의 딸 숙부인(淑夫人) 원주 변씨(原州邊氏)와 석릉군(石陵君) 김용행(金龍幸)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이선곽(李善郭)의 딸 숙부인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노구성(盧求聖)의 딸 해주 노씨(海州盧氏)이다. 화원 석씨(花園石氏)는 대구도호부의 속현인 화원현(花園縣)의 토성(土姓)이었으나 지금은 충주 석씨(忠州石氏)와 본이 통합되었다. 석지형의 손자 석자경(石自慶)이 대구도호부 반송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석지형(石之珩)[1610~?]은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1634년(인조 12) 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인조를 호위하였다. 횡성 현감을 거쳐 강화 교수(江華敎授)를 지냈는데, 강화 교수로 재임하던 1653년(효종 4) 상소를 올리면서 「오위귀감(五位龜鑑)」을 함께 바쳤다. 「오위귀감」은 『주역(周易)』을 추연(推演)한 것이다. 이에 효종이 은혜로운 비답을 내리고 호피(虎皮)를 하사하였다. 이후 개성 교수(開城敎授)·양주 교수(楊州敎授)·형조 좌랑·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2권 2책의 『수현집(壽峴集)』이 전한다. 병자호란 때의 일기인 4권 4책의 『남한 일기(南漢日記)』를 저술하였다.
[묘소]
묘는 황해북도 개풍군 해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承政院左承旨謙經筵參贊)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