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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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禹成范 |
영어공식명칭 | U Seong Beom |
이칭/별칭 | 백록당(白鹿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조선 전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단양 우씨 입향조.
[가계]
본관은 단양(丹陽). 역동 선생(易東先生) 우탁(禹倬)의 후손으로, 6대조 우현보(禹玄寳)는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등과 함께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충성파였다. 조선 왕조 건국 과정에서 우현보는 파직을 당하고 여러 차례 유배되었으며 후손들도 큰 피해를 당했다.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우며 복권되었다. 아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전사한 우배순(禹拜純)과 우배흠(禹拜欽), 우배화(禹拜化)이다.
[활동 사항]
우성범(禹成范)[1534~1603]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談)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31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학문을 즐기며 비슬산의 명승지를 두루 다니며 시를 남겼는데, 선조의 충절을 기리며 가정을 다스리고 후학을 가르치다 조용히 세상을 떠나 후대인이 그의 덕을 사모하였다고 전한다. 6대조 우현보가 파직을 당한 후 단양 우씨들은 화를 피하기 위해 여러 지역으로 숨어 들었는데. 당시 밀양부 풍각현[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송촌에 머물던 우성범이 그곳은 대대로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판단하여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백록동으로 이주하여 단양 우씨 입향조가 되었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최정산 자락에 있으며, '단양 우씨 백록 유허비(丹陽禹氏白鹿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백록 마을에 우성범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인 백록당(白鹿堂)이 있다. 백록당에서는 매년 음력 3월 20일 향사를 올린다. 백록당 서당(白鹿堂書堂)은 밀양인 우당(愚堂) 허욱(許煜)이 백록당을 존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서당으로,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었다 중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