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805
한자 金彦塾
영어공식명칭 Kim Eonsuk
이칭/별칭 사훈(士訓)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78년연표보기 - 김언숙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48년연표보기 - 김언숙 사망
출생지 현풍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묘소|단소 김언숙 묘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서흥
대표 관직|경력 선무랑 부장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사훈(士訓). 증조할아버지는 의영고사(義盈庫使)를 지낸 김소형(金小亨)이고, 할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호군(護軍)을 지낸 김유(金紐)이다. 아버지는 문경공(文敬公) 김굉필(金宏弼)이며, 어머니는 평양 부원군(平陽府院君) 박천상(朴天祥)의 딸 순천 박씨(順天朴氏)이다. 부인은 생원 최세명(崔世明)의 딸 숙인(淑人) 양천 최씨(陽川崔氏)와 현감을 지낸 장시택(張時澤)의 딸 숙인 인동 장씨(仁同張氏)이다.

[활동 사항]

김언숙(金彦塾)[1478~1548]은 가정의 교훈을 잇는 데 힘썼으며, 고향에 있으면서 영리를 멀리하였다. 특히 효성이 지극하여 1540년(중종 35) 모친상을 당하자 63세의 고령임에도 3년간 여묘(廬墓)를 하면서 한 번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아버지 김굉필이 유배를 당하게 되는데, 이때 김언숙도 연루되어 하동(河東)으로 유배를 갔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연산군이 물러가자 사면되었다. 이후 음직(蔭職)으로 선무랑 부장(宣務郞部將)에 임명되었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증손자 김응성(金應成)이 현달하여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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