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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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裝身具 |
영어공식명칭 | Accessorie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도희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옛날부터 사람들이 몸을 치장하기 위하여 착용하였던 도구.
[개설]
장신구는 우리나라 복식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장신구의 종류는 패물(佩物)[몸에 차는 것], 이식(耳飾)[귀걸이], 지환(指環)[반지] 등이다. 장신구는 실용적인 기능보다 자신의 몸을 장식하기 위하여 착용하였다.
[연원]
장신구는 인류가 구석기 때부터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때의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이 때의 장신구는 수렵이나 채집을 통하여 얻은 동물의 뼈와 조개 등을 이용한 것으로서 장식적인 기능과 함께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였다. 이후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 많은 장신구들은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인 기능이 뛰어나다. 삼국시대의 장신구는 신분에 따라 착용에 제한을 두었으며, 남녀가 각각 복식과 계절,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착용하였다.
[장신구의 종류]
장신구의 종류는 크게 패물, 이식, 지환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 몸에 차는 패물에는 대표적으로 노리개와 주머니가 있다. 노리개는 여자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 등에 차는 장신구로서 궁중에서부터 서민들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주머니는 삼국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실용적인 면에서 만들어졌다가 장식화되었다. 이식은 귀걸이로 남녀를 막론하고 착용하였는데 조선 선조 대에 유교사상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남자의 귀걸이는 사라졌다. 지환에는 가락지와 반지가 있었는데 『사절복색자장요람』을 보면, 재질에 따라 겨울에는 옥을 끼지 않고 여름에는 금을 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외에 단추나 향낭, 비녀와 뒤꽂이 등이 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장신구는 신분에 따른 제한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을 초월하여 착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노리개는 상류층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애용하여 왔으며, 단조로운 한복에 아름다움을 더하여 줄 뿐만 아니라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주머니는 사용한 천과 색, 부금에 따라 신분의 존비, 귀천, 상하를 구분하였지만 대체로 만복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장신구를 통하여 선조들의 멋과 장신구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알 수 있다.
[현황]
장신구는 현대사회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착용하는 것이다. 대구 지역에서도 다수의 장신구들이 발굴되었다.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로 추정되는 팔달동 유적과 삼국시대 달성고분군에서 발굴된 금동관, 백화수피관모, 은제조익형관식, 금제세환이식 등이 있다. 그리고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달성 성산리 고분군, 구암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 등지에서 발굴된 귀걸이, 금동제 허리띠, 금제태환이식, 팔찌 등이 있다. 장신구는 복식문화와 함께 종류와 양식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