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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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奎燦 |
영어공식명칭 | Kim Gyuchan |
이칭/별칭 | 덕장(德章),야암(野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덕장(德章), 호는 야암(野巖). 김굉필(金宏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김계조(金繼祖)이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김정제(金鼎濟)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김광운(金光運)이며, 어머니는 봉사(奉事)를 지낸 정진화(鄭鎭華)의 딸 하동 정씨(河東丁氏)이다. 부인은 윤치옥(尹致玉)의 딸 숙인(淑人) 파평 윤씨(坡平尹氏)와 곽규(郭奎)의 딸 숙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김규찬의 후손들이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못골에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김규찬(金奎燦)[1773~1839]은 1773년(영조 49) 현풍현 솔례리(率禮里)[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서 출생하였다. 1821년(순조 21)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이 되었으며, 1827년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와 한성 판관(漢城判官)을 역임하였다. 1828년(순조 28) 아산 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세미(稅米)가 변질되자 7개월 만에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고을 백성들이 충청 감영과 비변사(備邊司)에 정소(呈訴)하여 계속 머물러 줄 것을 청원하였다고 한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교동(校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