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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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行淡 |
영어공식명칭 | Haengdam Island |
이칭/별칭 | 토끼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추윤 |
비정 지역 | 행담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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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지명 |
관련 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있는 연륙도.
[명칭 유래]
행담은 매산리에서 동절기와 백중사리 때에 걸어서 건너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물건을 지고 갈 수 있는 섬이라서 행담도라고 한다. 일설에는 섬의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 토끼섬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행담도는 아산만 한가운데에 위치한 당진시의 북동부 신평면 매산리에 속하는 섬이다. 예전는 어촌이었으나 현재는 서해안 고속 도로 통과로 2000년에 완공된 서해 대교가 행담도를 관통하게 되면서 연륙되어 현재 휴게소로 이용되고 있다. 당진시에서 대난지도, 소난지도 다음으로 3번째로 큰 섬이다.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의 경계인 아산만 깊숙이 위치하였으며 조수 간만의 차가 9.2m에 이른다.
1985년의 『당진군 통계 연보』에 의하면 행담도 면적은 0.45k㎡이고 가구 수는 16가구에 남자 36명, 여자 29명으로 총 65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서해안 고속 도로 개통으로 전에 있던 한정 초등학교 행담도 분교도 없어지고, 주민들도 전부 육지로 소개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행담도는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의 경계인 아산만 깊숙이 위치해 있다.
[오페르트 사건]
행담도는 조선 시대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의 서곡이 된 오페르트 사건과 관계가 있는 중요한 섬이기도 하다.
1866년(고종 3) 2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영국 상선 로나(Rona)호를 타고 대호지면 조금리[당시 해미현 조금진]에 나타나 조선 정부에 대하여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고 돌아갔다가, 다시 1867년 7월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다가 또 다시 거절당하고 돌아갔다. 그 후 1868년(고종 5) 4월 오페르트는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통역관, 보좌관으로 대동하고 기선(汽船) 차이나호[680톤]에 작은 증기선 그레타(Greta)호[60톤]를 붙여 백인, 말레이인, 한국 천주교인 몇 명을 포함하여 약 100명의 청나라인 승무원을 데리고 중국 상하이를 떠나 1868년 4월 18일 신평면 매산리[당시 홍주목 신평현] 행담도에 정박하였다.
다시 그들은 그레타호에 옮겨 타고 밀물에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가 구양도를 거쳐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 구만포(九萬浦)까지 올라가 정박하고,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당시 덕산군 현내면 가야동]에 있던 흥선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에 도착하였다. 러시아군이라 자칭하고 무장된 채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하여 5시간 동안 작업했으나 관곽이 견고하고 날이 밝자 도굴에 실패하였다.
다시 구만포로 도주하여 그레타호를 타고 되돌아 가다가 하리후포[우강면 부장리 하리 마을]의 민가에 침입하며 횡포와 약탈을 감행한 후 4월 20일 행담도에 정박한 차이나호에 승선하고 아산만을 빠져나가 영종도 앞 동검도에 상륙했다. 당시 실권자인 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의 안내로 도굴을 시도한 것이라 하였다. 그 후 천주교인에 대하여 탄압과 박해를 더욱 강화하여 병인박해를 비롯한 천주교도 탄압 사건이 시작되었다.
[관련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 홍주 도서 조(洪州島嶼條)에 “행담도 신북지동소도야하유대진통수원첩로중유령옹암 상수원(行擔島新北之東小島也下有大津通水原捷路中有令翁岩詳水原)”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지형도』 아산 편에는 신평면 북쪽 바다에 지명이 확인되며 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 지지 자료』(1918)에는 면적이 0.015방리, 해안선 연장이 2,000m, 최고 지점의 진고는 34m로 나와 있다. 또한 『한국 연안 수로지』-서해안 편(대한민국 수로국, 1992)에 의하면, “행담도는 한진각(漢津角)의 동남쪽 약 3.7㎞에 있으며, 간출이퇴(干出泥堆)에 둘러싸여 있다. 섬 정상은 동쪽에 있으며 높이는 39m이다. 섬 북쪽 가까이에 있는 이퇴 상에 2~3개의 노출암(露出岩)이 있으며 가장 북방의 것이 높이 10m이다. 한진각과 행담도 사이에는 간출퇴가 퍼져 있으며 그 서측에 좁은 수도(水道)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정호(金正浩)가 1864년(고종 원년)에 발간한 지리서인 『대동지지(大東地志)』의 홍주 편에 의하면 “행담도는 신북면[현 신평면]의 동쪽 경계에 있는 작은 섬으로 그 아래에는 대진[한진]이 있고 수원 가는 지름길로 바다 가운데는 영웅암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한진 앞바다에 신평면 매산리 소속의 영웅암(英雄巖) 바위가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