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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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The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남석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형성된 청동기시대의 문화.
[개설]
청동기 문화는 신석기 시대 말인 기원전 10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 서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고인돌도 나타나 한반도의 토착 문화를 이루게 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생산 경제가 그전보다 발달하였고,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전문 장인이 출현하였으며,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청동기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 농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정착 생활을 가능케 했고 집단적인 취락을 형성하게 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주로 강을 따라 펼쳐진 평야를 앞에 둔 구릉지 위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것은 청동기인들이 목축과 수렵 외에도 농경에 크게 의존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동검인 비파형 동검은 만주로부터 한반도 전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 지역이 청동기시대에 같은 문화권에 속하였음을 보여 준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민무늬 토기는 지역에 따라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밑바닥이 편평한 원통 모양의 화분형과 밑바닥이 좁은 팽이형이 기본적인 모양이며 빛깔은 적갈색이다.
청동기시대에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등이 만들어졌고, 철기 시대에는 널무덤과 독무덤 등이 만들어졌다. 그중에서 계급 사회의 발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무덤이 고인돌이다. 고인돌의 전형적인 형태는 탁자식이다. 이것은 4개의 판석 형태의 굄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얹은 것이다. 무게가 수십 톤 이상인 덮개돌을 채석하여 운반하고 무덤에 설치하기까지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이 가진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유적 현황]
청동기 유적으로는 당진~대전 간 고속 도로 건설 공사 구간 내 문화 유적 시굴 조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된 당진군 면천면 자개리Ⅰ, Ⅱ 유적이 있다. 이 발굴 조사는 2003년의 1차 조사, 2004년의 추가 조사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청동기시대의 취락과 통일 신라 석곽묘 3기가 확인되었다. 자개리Ⅰ 유적지의 조사 면적은 무려 3만 7215㎡에 달했는데 청동기시대 유적은 노지가 설치된 장방형 주거지와 평면 형태가 방형, 원형인 주거지가 모두 58기·돌널무덤[석관묘] 1기·수혈 유구(竪穴遺構) 8기·구덩이 4기·성격 미상의 유구(遺構) 2기 등 모두 73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토기편류, 반달 돌칼[반월형 석도], 홈자귀[유구석부(有溝石斧)], 흙도, 돌칼[석도(石刀)], 돌화살촉, 탄화 곡물 등 많은 유물도 발견되었다. 자개리Ⅱ 유적지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22기, 원형 및 방형의 수혈 유구 4기, 돌덧널무덤[석곽묘] 10기, 조선시대 수혈 2기가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백제 문화재 연구원에서는 2007년 당진읍 원당리 유적에서 주거지 1기를 확인하였고, 당진읍 우두리 유적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2009]. 그리고 석문 국가 산업 단지 조성 부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32기, 수혈 유구 14기가 확인되었고[2009], 고대면 성산리 유적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47기, 수혈 유구 25기가 확인되었다[2010]. 송악면 기지시리 내기 유적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 14기, 수혈 유구 25기가 확인되었다[2010]. 송산면 제2 일반 산업 단지 조성 부지 2구역에서 지석묘 1기가 확인되었다[2010].
[의의와 평가]
당진 지역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자개리 유적은 당진 지역 청동기 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유적은 금강 유역권을 중심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농경 문화가 북쪽으로 전파되면서 혼합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자개리 유적은 환호취락(環濠聚落)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환호취락은 산꼭대기나 능선에 마을을 조성한 후, 그 둘레로 둥글게 구덩이를 파서 맹수, 해충의 침입을 막는 마을 형태이다. 이러한 취락 형태는 그동안 서천, 보령권에서 많이 등장했던 청동기 취락 구조이다. 결국 자개리 유적을 통해 당진 지역이 금강 유역권 청동기 문화의 북방 한계선으로 설정되었다.
또한 당진 지역은 서해안의 북쪽에 위치하고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대부분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지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청동기 시대 인류가 활발하게 정주 생활을 영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당진군내 여러 곳의 발굴 조사에서도 다수의 청동기시대 관련 유적이 확인된 바 있다. 유적의 발굴 여하에 따라서는 당진 지역 청동기 문화의 특성을 새롭게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