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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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津浦鎭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학로 |
건립 시기/일시 | 1514년 - 당진포진성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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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월 11일 - 당진포진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당진포진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소재지 | 당진포진성 -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산64-3 |
성격 | 성 |
지정 면적 | 20,846.9㎡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해안 방어를 위한 성.
[개설]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다. 당진포 나루는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세곡미를 거두어 저장하던 조창인 당진포 해창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엄중한 보호와 방어가 필요했던 곳이다.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은 충청 수영 산하의 수군 만호가 주둔하며 서산, 당진 일대를 지키던 조선 시대 군사적 요충이었다. 진성이 있는 망재산은 주변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전면이 넓은 바다로 시야가 탁 트여 군사적 요지임을 알 수 있다. 망재산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난지도(難知島)까지 보인다.
[변천]
당진포진성은 당진포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설치한 해안 방어용 산성이다. 1514년(중종 9)에 쌓은 것으로 높이 2.72m, 둘레 약 550m, 면적 20,846.9㎡ 정도로 산 능선을 따라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장방형 성곽이다. 『조선왕조실록』 1458년(세조 4) 6월 29일 조에 의하면 "당진포 만호를 난지도로 옮겼"던 사실과 "난지도가 물길이 험악하고, 얼음이 얼면 출입이 어려워 다시 당진포에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진포 만호는 한때 난지도로 옮겨 운영되기도 하였고, 1458년에 다시 당진포로 옮겨 방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산64-3번지 외 15필지가 당진포진성이 있던 곳이다.
[현황]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된 당진포진성은 현재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방조제 축조 때도 성 돌을 가져다 사용하면서 거의 유실되어 석축한 흔적만 남아 있다. 당진포진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에 쌓은 작은 성인 옹성의 형태가 나타나 있고, 윗부분에 설치된 덮개돌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등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이다. 망제산 정상에는 망해정이 있어서 현재도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된다.
[의의와 평가]
당진포는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고, 조창인 해창이 있어서 조운선의 출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진성을 쌓고 만호를 두어 군사적으로 보호하고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 당진포에 군사 방어 시설인 진성을 쌓고, 조선 시대 충청 수영 산하 3개 만호 중 하나인 당진포 만호를 두어 군사를 주둔시켰던 것은 당진포가 국가의 주요한 포구로 기능하였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