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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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仲三 |
영어공식명칭 | Do Jungsa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 도중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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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0월 - 도중삼 정정현 의진에 투신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0월 - 도중삼 당진 분파소 습격 |
몰년 시기/일시 | 1907년 - 도중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도중삼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도중삼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
거주|이주지 | 도중삼 거주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 |
성격 | 항일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07년 정미 의병 활동 |
[정의]
근대 개항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항일 의병.
[개설]
도중삼(都仲三)[1878~1907]은 1907년 10월 항일 의병에 투신하여 항쟁하다가 1907년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활동 사항]
충청남도 면천군 승선면 가재동[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서 태어난 도중삼은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에 투신하였다.
일제는 1907년 7월에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켰고, 이어서 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행정력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8월에는 대한 제국의 정규 군대를 강제로 해산함으로써 대한 제국을 무기력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일제의 침략은 한민족의 항일 의식을 더욱 고조시켰다.
도중삼은 1907년 10월, 이경칠(李敬七)의 권유로 경기도 수원 일대에서 활약하던 정정현(鄭定鉉) 의병 진영에 합류하였다. 정정현 의진은 1907년 10월에 의병 55명과 함께 수원에서 배를 타고 송악읍 한진(漢津) 포구에 상륙하여 당진 분파소를 습격하고 당진군 군내면 북창(北倉)에서 수원 안중리로 돌아갔다. 11월에도 다시 송악읍 한진에 상륙하였고 예산군 신례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도중삼은 당진군 우강면에서 의병을 모집하던 중, 남원포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도중삼은 면천 분파소로 압송될 때 포승을 끊고 대항하다가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도중삼의 공훈을 기려 2003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