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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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畿誌楊州牧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현욱 |
[정의]
도봉구를 포함하는 양주목이 수록된 조선 후기의 지리지.
[개설]
『경기지(京畿誌)』는 경기도 소관 각 읍에서 작성한 읍지 34부를 모아 4책으로 묶은 통지(統誌)이다. 수록된 일부 읍지에 ‘도광(道光) 22년’ 또는 ‘도광 23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42년(헌종 8)~1843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
『경기지』에 포함된 각 군 읍지의 항목 차이, 동일 항목에서의 내용의 상세 여부 등에서 편차가 발생한 것에 비추어 경기도 소관 각 군현에서 개별적으로 읍지를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간행 경위]
경기도 소관 군현 가운데 영종(永宗)의 경우 1818년에 새롭게 설치된 진으로서 5개 속면 가운데 4개 면이 인천에서 관할을 옮긴 것이다. 따라서 영종뿐만 아니라 인천도 읍지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장단(長湍)의 경우 읍지의 편찬 경위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미루어 볼 때, 당시 경기도 지역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읍지의 필요에 의해 편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형태/서지]
『경기지』는 총 4책으로 34개 군현의 읍지를 묶어 놓았다. 필사본으로 각 읍지의 첫머리에는 채색 지도를 배치하였다. 규격은 30.3×20.3㎝이다.
[구성/내용]
『경기지』는 통상적인 읍지의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가장 먼저 1책에 수록된 『경기지』「양주목」의 경우 사계(四界), 건치 연혁, 군명, 성씨, 산천, 제언, 토산, 봉수, 궁전, 학교, 서원, 역원, 발참(撥站), 목장, 면리, 불우(佛宇), 사묘(祠廟), 능묘(陵墓), 고적, 명관(名官), 인물, 제영(題詠), 진공(進貢), 장시(場市), 교량, 민호, 전부(田賦), 군액(軍額), 조적(糶糴), 공해(公廨), 관방(關防), 형승(形勝)의 항목을 설정하고 있다. 수록된 다른 군현 읍지의 경우 항목 설정 또는 동일 항목 서술에서 약간씩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 가장 앞머리에 배치된 채색 지도에는 현재 도봉구에 위치하였던 해등촌면(海等村面), 누원점(樓院店), 도봉 서원, 연산군 묘가 표시되어 있다.
『경기지』「양주목」의 내용 가운데 서원 항목에서 도봉 서원이 현재의 도봉구인 해등촌면에 위치하고 있음과 건립의 연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기하고 있다. 또한 면리 항목에 해등촌면이 기재되어 있다. 능묘 항목에서는 각 능 및 원(園), 유명 인물의 묘를 다수 기록하고 있다. 인물 항목은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충신, 효자, 열녀 등을 서술하고 있는데 간략한 설명이 부기되어 있다. 전부 항목에서는 결총(結摠), 균역(均役) 등의 내용을 기록하였으며 군액 항목에서는 종류별로 군총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기지』「양주목」에서는 진공, 민호, 전부, 군액, 조적 등의 항목을 후반부에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재정 단위로서의 읍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앞선 시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체제와 비교하면, 능묘 및 인물 항목의 서술이 대폭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경기지』가 『여지도서』에 비하여 인문 환경 또는 문화적 측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서술되었음을 의미한다.
『경기지』 전체적으로는 기존 읍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싣지 않고 편찬 당시의 변화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호구 기록에 경자식 호적(庚子式戶籍)을 참고한 점이나 제언, 관직 체계의 변화를 최신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편찬 당시 각 읍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