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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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蘆原伏在延齡君房田畓打量成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1734년 도봉구의 옛 관할 지역이었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에 있던 연령군방의 궁방전답을 조사하여 기록한 책.
[개설]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1699~1719]은 조선 숙종과 명빈 박씨(䄙嬪朴氏) 사이의 소생으로, 숙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다섯 살 때인 1703년(숙종 29)에 연령군으로 봉해졌고, 1707년(숙종 33) 9세의 나이로 판돈령부사 김동필(金東弼)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2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양주 노원 복재 연령군방 전답 타량 성책(楊州蘆原伏在延齡君房田畓打量成冊)』은 연령군방(延齡君房)에 귀속되어 있던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 일대의 궁방전을 측량[타량]하여 작성한 책이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시대에는 국왕과 왕비, 대군, 공주 등 왕실 구성원에게 각각 일정한 토지를 나누어 주어 그 소출을 경비로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토지를 궁방전(宮房田), 혹은 궁장토(宮庄土)라고 한다. 궁방전은 전국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각 궁방들은 자신의 궁방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양안(量案)을 작성하였는데, 『양주 노원 복재 연령군방 전답 타량 성책』 역시 연령군방 소유의 논밭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1734년 10월(영조 10)에 작성되었다. 책의 맨 마지막에 ‘행목사 조(行牧使 趙)’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양주 목사(楊州牧使)가 이 양안의 작성 책임자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서지]
한 권으로 된 책으로, 크기는 가로 23㎝, 세로 39㎝이고, 표지를 제외하고 총 7매이다. 내제(內題)에는 ‘갑인 시월일 양주 노원면 복재 연령군 전답 타량 성책(甲寅十月日楊州蘆原面伏在延齡君房田畓打量成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양주 노원 복재 연령군방 전답 타량 성책』은 총 112필지의 토지에 대한 기록으로, 일반적인 궁방 양안과 마찬가지로 위치와 넓이, 관련 인명 등이 기재되어 있다. 각각의 필지에 대해서는 자호(字號)와 지번(地番)이 기록되어 있고, 지목(地目), 즉 논인지 밭인지에 대한 정보와 가로, 세로의 길이, 결부 수, 사표(四標)[사방의 경계표]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주 홍삼찬(主 洪三贊)’과 같이 이 토지와 관련된 인명이 총 10명 등장하는데, 궁방전의 소유주가 궁방인 점을 고려하면, 이때의 인명은 이 토지를 실제로 경작하고 있던 중답주(中畓主)이거나 혹은 세금 징수를 담당하던 도장(導掌)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각 필지의 넓이는 가장 넓은 것이 9부 4속[약 10두락]부터 가장 작은 것은 2속까지 다양한데, 다른 지역에 비하면 한 필지의 면적은 작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양안과 가장 다른 점은 전체 궁방전의 규모를 알려주는 “이상(已上) 운운”하는 기재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현전하는 궁방 양안은 총 6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연령군방의 궁방 양안으로는 『양주 노원 복재 연령군방 전답 타량 성책』이 유일하다. 경기도 양주(楊州)의 양안도 약 20건 정도가 전해지는데, 현 도봉구의 관할 지역이었던 노원면 일대의 양안으로 적시되고 있는 것은 이 『양주 노원 복재 연령군방 전답 타량 성책』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