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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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正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한 양주 군수를 지낸 관료.
[활동 사항]
김정제(金正濟)는 1913년 4월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금암동에서 김상억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소학교와 광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예과 문과에 입학하였다. 1933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해 1936년 3월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1942년 6월까지 충청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사회계 주임]으로 재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 1937년에는 충주군 속을, 1938년~1940년까지 청주군 속, 1941~1942년 6월 청주군 속 겸 충청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를 겸임하였다. 내무부 지방과 속으로 재직하던 때에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여론 환기 및 국방 사상 선전, 전사상자(戰死傷者) 위문, 군대 및 유가족 후원 위문,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 자금 모집 등의 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 사변 공로자 공적 조서(支那事變功勞者功績調書)』에 이름이 올랐다.
1940년 10월 일본 고등 문관 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1942년 6월 군수로 승진하여 경기도 파주 군수를 지냈고, 1943년 8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양주 군수를 지냈다. 양주 군수로서의 활동 내역은 자료가 없어 잘 알 수 없다. 해방 후 1945년 8월부터 1946년 1월까지 서울 동대문 경찰서장을 지냈다. 1948년 11월부터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장을, 1949년 2월부터 11월까지 경무과장을 지냈다. 치안국 보안과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였는데, 1950년 5월 남로당 가입 사실이 밝혀져 구속되었다.
6·25 전쟁 이 터지면서 출옥한 후 바로 월북하여, 간첩 교육을 받고 공작원으로서 그 해 10월 26일 남파되었다. 그 후 남로당과의 인연을 청산한 것처럼 위장하고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남하하여 본격적인 공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당시의 집권당 자유당의 간부들과 교류하여 각종 분야의 기밀을 탐지하여 북한에 보고하는 한편, 남파 공작 연락원과 접선하여 공작 지령을 접수하고 그 결과를 무전으로 보고하였다.
1956년 여름에는 월북하여 북한 정권으로부터 ‘국기 훈장 2급’을 받았다. 김정제의 위장된 정치권 활동은 야당에까지 미치며 1957년 당시 그가 간첩 활동의 대상으로 삼아 긴밀히 접촉했던 인사가 장관급·국회 의원 및 각 정당의 간부 등 고위층만 50여 명에 달하였다. 하지만 남파 간첩 한영창이 검거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그 배후에 김정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검거되었다. 1961년 7월 사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