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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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閣雜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정심 |
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산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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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전적 |
저자 | 이정형(李廷馨)[1549~1607] |
권책 | 2권 1책 |
[정의]
도봉 서원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조선 후기 이정형의 전적.
[개설]
『동각잡기(東閣雜記)』는 이정형(李廷馨)[1549~1607]이 국가의 정치와 명신(名臣)의 행적(行蹟)을 기록한 야사(野史)이다. 도봉 서원(道峯書院)에 대한 내용은 『동각잡기』 하권에 나온다. 중국에서 시작된 서원의 기원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소수 서원(紹修書院)]을 필두로 13개의 서원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 도봉 서원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
이정형은 조선 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덕훈(德薰), 호는 지퇴당(知退堂)·동각(東閣)이다. 임진왜란 때 좌승지로 왕을 보위하고 평안도로 가다가 송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막았으며, 만년에 들어서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저서로는 『황토기사(黃兔記事)』, 『지퇴당집(知退堂集)』, 『동각잡기』 등이 있다.
[구성/내용]
서원은 송(宋)나라 시대에 시작하여 원(元)나라 말년에 성하였으나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가정(嘉靖) 연간에 사문(斯文) 주세붕(周世鵬)이 풍기 군수로 있을 때에 군내 백운동(白雲洞)에 안유(安裕)가 살던 옛 터에 서원을 창립하여 선비들이 수양하고 글 읽을 처소로 삼고 이어서 사당을 세워 안유(安裕)를 제사 지냈다. 조정에 알려지자 소수 서원이란 이름을 내렸다. 그 뒤에 잇달아 설립되니, 영천(永川)에는 임고(臨皐) 서원, 함양에는 남계(藍溪) 서원, 송도에는 숭양(崧陽) 서원, 성주에는 천곡(川谷) 서원, 해주에는 문헌(文憲) 서원, 능성(綾城)에는 쌍봉(雙峰) 서원, 양주에는 도봉(道峯) 서원, 예안(禮安)에는 도산 서원, 안동에는 수곡(樹谷) 서원, 영천(榮川)에는 이산(伊山) 서원, 강릉에는 구산(丘山) 서원, 대구에는 획암(畫岩) 서원인데, 혹은 유선(儒先)이 거처하던 곳으로 혹은 왕래하던 땅으로 모두 사당을 세워 제사 지냈다. 이 밖에도 또한 많이 있는데, 다 기록하지 못한다[書院。昉於宋時。盛於元季。我東則闕焉。嘉靖年間。周斯文世鵬。爲豐基守。於郡地白雲洞安裕舊基。創書院。爲士子藏修之所。仍立祠以祀裕。聞于朝。賜號紹修。厥後相繼建立。永川曰臨皐。咸陽曰濫溪。松都曰崧陽。星州曰川谷。海州曰文憲。綾城曰雙峯。楊州曰道峰。禮安曰陶山。安東曰樹谷。榮川曰伊山。江陵曰丘山。大丘曰晝岩。或以儒先所居。或以其往來之地並立廟宇以祀之。此外亦多有之。而不能盡記。].
[의의와 평가]
『동각잡기』는 조선 개국 이후로 임진왜란 전후까지 중요한 사건을 사실대로 기록하여 사료적인 가치가 높다. ‘서원’을 설명한 이 항목에서는 13개의 서원을 나열하며 “이 밖에도 또한 많이 있는데, 다 기록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서원에 대해 알 수 있다. 성낙훈은 해제에서 “야사를 만들려고 유의(留意)한 저술로서 국가의 정치와 명신(名臣)의 행적(行蹟) 이외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정사(正史)의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동야승(大東野乘)』 중에 제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