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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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簡公 李正英 墓域 |
영어공식명칭 | HyoganGong Lee Jung-young Cemetery |
이칭/별칭 | 이정영 묘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79|산44-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16년(광해군 8) - 이정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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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86년(숙종 12) - 이정영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5월 10일 - 효간공 이정영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4호 지정 |
현 소재지 | 효간공 이정영 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4동 산44-7 |
성격 | 분묘 |
관련 인물 | 이정영|이경직 |
관리자 | 전주 이씨 함풍군파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4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효간공 이정영의 묘역.
[개설]
조선 후기 문신인 이정영(李正英)[1616~1686]의 묘역이다. 호는 서곡(西谷)이고 시호는 효간공(孝簡公)이다. 전주 이씨로 호조판서, 도승지, 강화유수를 역임한 이경직(李景稷)[1577~1640]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그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가 청 태종의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갈때 시종(侍從)하였다. 청에서 돌아온 후 효종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간 등의 청요직을 거쳐 현종 연간에는 평안도관찰사·도승지·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677년(숙종 3)에는 형조판서가 되어 과거 시험의 시관(試官)을 맡았는데 부정을 저지른 죄목으로 철원에 유배를 갔으나 곧 풀려나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5년(숙종 11)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제수되었다가 연로한 고위 문신들만 들어갈 수 있는 기로소에 입소하는 영예를 누렸다. 전서(篆書)와 주서(籒書)를 잘 써서 「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 「영안위홍주원비(永安尉洪柱元碑)」, 「호판이경직비(戶判李景稷碑)」 등의 글씨를 남겼다.
[위치]
효간공 이정영 묘역은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4동 화장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형태]
효간공 이정영 묘역에는 봉분과 신도비(神道碑)가 조성되어 있다. 먼저 봉분 주위에는 묘갈(墓碣) 1기와 석물인 상석(床石) 1기, 문인석(文人石) 2기, 망주석(望柱石) 1기 등이 둘러서 있다. 별도로 조성된 신도비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옥개석이 올라가 있으며 높이 270㎝, 폭 90㎝, 두께 30㎝의 크기이다.
[현황]
효간공 이정영 묘역이 있는 토지의 면적은 308.6㎡이다. 1994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전주 이씨 함풍군파(咸豊君派)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인 17~18세기의 분묘(墳墓) 형식과 조성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석물은 당대의 석조미술 양식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