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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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陰城水精山城 |
영어의미역 | Sujeong Fortress |
이칭/별칭 | 고산성(古山城),수정산토성(水精山土城),수정산성(水晶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평곡리|한벌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차용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12월 31일 - 음성 수정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1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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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음성 수정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성곽 |
양식 | 석성 |
건립시기/연도 | 고려시대 |
관련인물 | 박서 |
높이 | 7m |
길이 | 577m |
둘레 | 577m |
면적 | 203,414㎡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평곡리·한벌리 |
소유자 | 음성군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일원에 있는 고대 국방 시설.
[개설]
음성 수정산성의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고문헌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호서읍지(湖西邑誌)』·『대동지지(大東地志)』·『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에 의하면 수정산이 ‘음성 읍내의 동쪽 3리 또는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을 살펴보면 음성 수정산성은 『호서승람(湖西勝覽)』을 제외하고 모두 고산성(古山城)이라고 되어 있으며, 둘레는 1,271척이고 높이는 1장이 넘으며 성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하였다. 성 남쪽에 음성현의 옛 터가 있는데 관평(官坪)이라 불려진다고 하였다.
이밖에 고지도에서도 음성 수정산성의 위치와 함께 산성이 표시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여지도서』 음성현 지도에는 수정산성(水精山城)이라 하였고, 『충청도읍지』의 음성현 지도에는 수정산 토성(水精山 土城), 『호서읍지』에는 수정산성(水晶山城)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음성읍의 동쪽 약 7백 간 수정산 봉우리에 있고 수정산성이라 칭함. 석축으로서 둘레 삼백오십 간, 높이 5척, 폭 3척, 완전함’이라 하였고, 1971년에 간행된 『전국유적목록』에는 ‘수정산성이라 칭함, 석축, 둘레 350간, 높이 5척, 폭 3척’이라 하였다. 1977년에 간행된 『문화유적총람』에는 ‘음성읍 동쪽 약 1.2㎞ 떨어진 수정산에 있는 성으로 고려시대에 토축하였던 것을 조선 숙종조에 석축하여 보강하고자 하였으나 동쪽 일부가 완성되지 못했다’고 전한다.
남매 축성 설화와 할애비성·할미성의 축성 설화가 있으며, 고려시대 장수인 박서(朴犀)가 음성백(陰城伯)으로 있을 때 축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산성 안에는 수원이 부족하고 성의 내부 면적이 좁은 편이어서 장기간 머물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방어용으로 축성했다기보다는 전략적인 거점 확보를 위하여 축성한 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수정산은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와 평곡리 및 한벌리에 걸쳐 있는 해발 363.3m의 산으로서 평곡리 일대에 치소를 두고 있었던 고려시대까지는 음성현의 진산(鎭山)이었다, 음성~충주 간의 국도 36호선의 잣고개 마루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육교 부근에서 동쪽으로 난 등산로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서 약 3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약수터와 체육 시설 및 광장이 있는데 이곳으로부터 수정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길은 정상부에 가까이 이르러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이곳으로부터 산성이 있는 정상까지는 약 100m이다.
[형태]
음성 수정산성의 형세는 북면을 밑면으로 하고 남쪽 치를 꼭지점으로 하는 부등형의 이등변 삼각형 모양이다. 정상부에 테를 두르듯이 자연 지형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남쪽이 북쪽보다 약간 높고,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이 서쪽보다 낮은 서고동저형의 지형이다. 원래 토축 산성이 있던 것을 조선 후기에 돌로 고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의 둘레는 577m이고 평면 형태는 전체적으로 부정형의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성 내부의 면적은 203,414㎡ 정도이다. 성내의 구조물로는 세 동 이상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문은 동문·서문·북문 등 세 곳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는데 기초 부분을 ‘L’자 형태로 팠으며 외벽의 표면석과 내부의 뒤채움 성돌은 차곡차곡 가로로 층을 이루면서 쌓았다. 성돌은 대부분 수정산 일대에서 채취한 것으로 보이나 일부는 먼 곳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외벽의 표면석은 가로가 넓고 길이가 짧은 사각 방추형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뒷채움 돌은 좁고 길쭉한 견치석(犬齒石)을 서로 물리게 쌓아 견고하게 하였다.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지만 북쪽과 동남쪽에 비하여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서쪽 성벽은 지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최저 2.5m 정도에서부터 최대 7m 가량이며 성벽의 폭은 380㎝ 내외이다.
성벽 안쪽에는 폭 1m 내외, 깊이 60㎝ 내외로 얕게 파낸 도랑 형태의 배수로가 보이고 있다. 이 도랑을 참호로 보기도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성벽의 안전을 위해 20여 년 전에 음성군에서 만든 배수로라고 한다. 또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성 안에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샘이 한 곳 발견되었다.
성안에서는 기와와 토기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대략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으며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고 폐허가 된 것을 보인다.
음성 수정산성은 성의 잔존 상태나 축성 기법으로 보아 산성의 주된 방어 대상 지역은 현재의 음성읍이 있는 서쪽 방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상단 부분의 폭은 대략 4m이며 성의 내부에는 성벽을 따라가며 4~5m 폭의 회랑도가 개설되어 있다. 산성의 3곳 모서리에는 성벽의 외벽을 돌출시켜 쌓음으로써 치성(雉城)의 기능을 하도록 하였으며, 치 위에는 각루(角樓)가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성의 대부분은 허물어진 상태로 성벽 가운데 서쪽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남쪽 면과 북동쪽 경사면에는 일부의 석축만 남아 있다. 북서쪽의 산 정상부에 묘가 한 기 있고, 그 남쪽에도 묘 한 기가 있다. 이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성벽의 붕괴가 심하며, 동남쪽 성벽도 북쪽 성벽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무너져 내려 토성인지 석성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서쪽 성벽은 석축의 대부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주변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샘이라고 불리고 있는 샘은 현재 가뭄으로 말라 있는 상태이다. 1999년 12월 3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